[사설] 이산가족 상봉,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오피니언·칼럼
사설

최근 북한의 모 단체가 우리 이산가족 단체에 방북 초청장을 보냈다. 평양에 와서 남북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인데 통일부는 방북 승인에 앞서 초청장을 보낸 북측 기관의 성격과 남북 관계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방북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북측의 초청을 받은 남측 단체는 사)남북이산가족협회고 류재복 회장을 포함해 관계자 3명이다. 류 회장은 이 초청장을 지난 7일 통일부에 제출하고 10일 방북 승인 신청서를 냈다.

통일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방북 초청장을 보낸 북측 기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해당 기관의 신뢰도 등을 꼼꼼히 살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방북 신청을 접수하면 7일 안에 승인 여부를 답해야 하기 때문에 회신을 마냥 늦출 순 없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추석연휴를 앞두고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 논의를 위한 남북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무시하고 미사일 도발을 계속했다. 우리 정부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다가 불쑥 민간단체를 평양으로 초청한 게 미심쩍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다할 이유도 없다.

북한이 남북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민간단체 관계자를 평양으로 초청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남북이산가족찾기’ 등의 사안은 정부 당국을 통해 남북적십자사가 주관해왔지 민간단체를 대화 파트너로 삼아 진행한 적이 없다.

북한의 태도가 전과 다르긴 하지만 잘만 진행되면 경색된 남북 관계에 하나의 돌파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만큼 남북 간에 정치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영향을 덜 받을 것이란 기대도 하게 된다.

하지만 걸리는 문제가 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려면 북한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북측이 요구하는 비용이 한가족당 300만 원선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남한처럼 이미 파악이 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소요되는 예산 마련이 아니다.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법’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단체에 사업·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다. 통일부도 그동안 북한 가족의 생사를 처음 확인할 때는 심사를 거쳐 300만 원 안에서 경비를 지급해왔다.

법도, 예산도 걸림돌이 아닌데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북한이 이 돈을 받아 과연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이라는 목적대로 사용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에서 북한으로 보낸 현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는 문제를 줄곧 지적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8월 이산가족 상봉 때도 정부가 수십억 원을 지원했지만 북한이 그 돈을 군사 목적으로 전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남북이산가족협회에게 보낸 초청장의 발신처가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 총회사 가운데 한 곳에서 관리하는 단체일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정보 당국도 해당 단체의 실체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초청장이 북한 통일전선부와 관련이 있다면 순수한 이산가족 상봉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통일전선부는 북한 조선로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이다. 흔히 통전부로 불리며 주로 남한 내 민간단체나 해외 동포, 유학생들을 포섭하기 위해 선전, 선동, 친북조직 관리 같은 임무를 담당한다.

통일전선부 산하 조직을 민간단체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 남북이산가족협회와는 성격도 하는 업무도 완전히 다른 단체가 이산가족 문제를 의논하자며 평양으로 오라는 걸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을 정식 제안했을 땐 시큰둥하다가 갑자기 이산가족 문제를 들고 나온 점도 수상하다.

북한은 김정은의 지시로 지난해 4월 이산가족 상봉장으로 사용되던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해금강호텔’을 일방적으로 해체했다. 남북 화해의 대명사 같은 이곳을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해체한 건 남북 당국 간의 합의를 깬 것일 뿐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그런 북한이 갑자기 이산가족 문제를 들고 나온 배경에 최악의 식량난을 들 수 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군인 1인당 지급하는 곡물 배급량을 기존 620g에서 580g으로 축소했다고 한다. 함경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게 된 원인이 전례 없이 많은 미사일을 쏘느라 엄청난 예산을 낭비한 탓이란 분석이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한지 74년이 지났다. 지금 이산가족 당사자들이 대부분 80~90대 고령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 5년이 현실적으로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국내 상봉 희망자에겐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북한이 동포애 차원에서 진정성 있게 이 문제에 접근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