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의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가 최근 이 매체에 ‘우리 영혼을 위한 치열한 전쟁: 죄를 지을 기회가 너무 많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아래는 그 주요 내용.
역사상 어떤 세대도 산만하게 하는 이토록 많은 것을 다룬 적이 없었다. 역사상 어떤 세대도 그토록 많은 유혹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역사상 어떤 세대도 우리의 손끝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오락과 더러운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치열한 영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치 휴가를 온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우리 영혼의 원수가 우리 영혼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히 죄의 유혹과 세상의 산만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독특하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죄를 지을 기회가 아주 많다.
죄가 당신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성경이 당신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죄가 당신을 기도하지 못하게 막거나, 기도가 당신을 죄로부터 지켜준다. 두 경우 모두 죄가 많을수록 하나님께 대해 헌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영적 원리다.
산만함이 우리를 주님 안에서 성숙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 점을 말씀하셨다. 그 비유에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풀이 되었으나 가시에 막혀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 가시들은 무엇을 상징하나? 예수께서 설명하신 바와 같이, 그것들은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이다. 그것들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가시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케이블 TV가 나오기 전을 생각해 보라.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4~5개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자정에 방송을 중단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우리 집 TV는 흑백이었고 종종 수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전에는 라디오만 있었고 그 전에는 책과 테이블 게임 등만 있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휴대전화로 속보를 보거나 무수히 많은 영화를 보거나 수많은 라이브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과 대조해 보라. 끝없이 쏟아지는 문자, 이메일, 소셜 미디어 게시물로 인해 끊임없이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잊지 말자.
주님께 헌신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며, 우리가 육체적 욕구를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의 다른 영역을 지배할 가능성은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