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새벽(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과 7.5의 여진이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접경 지역을 연이어 강타했다. 이 지진으로 현재까지 사망자가 1만여 명에 달하고 부상자도 5만3천여 명에 이르는 최악의 재난이 발생했다.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현지에 구조대를 긴급 파견해 구조와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으나 붕괴된 건물 밑에 매몰된 사람이 많아 앞으로 희생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뒤흔든 강진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번 지진에 따른 전체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튀르키예를 강타한 이번 지진은 그 위력이 원자폭탄 수십 개와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엄청난 지진이 튀르키예 남부 도시를 휩쓸면서 건물 5,000여 채가 순식간에 붕괴되고 아파타 등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매몰됐다. 안타까운 건 지진이 모두 잠든 밤과 새벽에 발생하면서 사람들이 대피할 새가 없었다는 점이다.
튀르키예에 닥친 엄청난 재앙 앞에 세계 각국이 앞 다퉈 구호와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뿐 만 아니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피해 지역에 이미 긴급 구호팀을 보냈거나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튀르키예와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는 인접 국가인 그리스, 나토 가입 문제 등 정치 외교적으로 불편한 사이인 스웨덴, 핀란드까지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고 한다. 아무리 국가 간에 해묵은 갈등이 있어도 비극적 참사 앞에서 모두가 발 벗고 나서 돕는 진정한 인류애를 보며 가슴이 한 켠이 따뜻해진다.
우리 정부도 튀르키예 재난 지역에 긴급구호대 110여 명을 급파하고 500만 달러의 긴급 지원금을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에서 “1950년 공산 침략 받았을 때 지체없이 대규모 파병으로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켜준 형제 나라 튀르키예를 돕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라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우리 군 수송기를 이용한 구조 인력 급파 및 긴급 의약품 지원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튀르키예 재난 지역에 파견한 군 병력 50명 등 110여 명의 긴급구호대는 우리나라 가 해외에 보낸 역대 최대 규모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올라간 데 따른 의무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튀르키예와의 관계가 그만큼 각별하고 돈독하는 뜻이다.
우리에게 있어 튀르키예는 형제의 나라다. 튀르키예 국민들도 대한민국을 형제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친근하게 대한다. 그건 6.25 전쟁이 맺어준 두 나라 사이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군인을 파병한 나라다. UN군을 파병해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UN에 강력히 요청한 것도 튀르키예였다.
UN이 파병을 결정하자 튀르키예 정부는 지체 없이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한국전에 투입했고 자유를 위해 최전방에서 북한·중공군과 피 흘리며 싸웠다. 한국전에 참전한 튀르키예 군인은 UN군 파병참전 규모로 4위였고, 전사자도 741명으로 미군, 영국군 다음으로 많았다. 그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 한국을 목숨 걸고 도운 건 오로지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3·4위전에 맞붙었을 때 한국 관중들은 한국과 터키를 동시에 응원했다. 그리고 경기가 터키의 승리로 끝나자 양국 국기를 펼쳐 터키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이는 6.25 전쟁에서 우리를 위해 싸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면서 터키 국민들 가슴 속에 진한 감동으로 새겨졌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직도 터키(Turkey)가 언제부터 ‘튀르키예(Türkiye)’로 바뀌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다소 생소한 이 이름은 터키 정부가 지난해 6월 UN에 그동안 써오던 영어식 발음의 ‘터키’ 대신 자국 언어 표기에 따른 ‘튀르키예’ 즉 ‘튀르크인의 땅’이란 명칭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고 이를 UN이 승인하면서 새롭게 불려지게 됐다.
튀르키예는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했던 소아시아의 중심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길리기아 다소 갑바도기아 등에서 복음을 전하며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당시의 세계관으로 볼 때 튀르키예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끝’이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튀르키예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이슬람국가로 변모한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땅에서 복음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아직도 복음을 들고 튀르키예 전역에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7일 발표한 성명에서 “튀르키예는 지금은 이슬람국가지만 과거에는 사도 바울의 전도로 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찾는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면서 “무엇보다 6.25 전쟁에서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며 피를 나눈 형제 나라 튀르키예가 하루속히 고통과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하자”고 했다.
지금 튀르키예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이 닥쳤다. 형제 같은 튀르키예 국민이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다. 주님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저들을 일으키고 상처를 싸매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명하셨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야 73년 전에 진 빚을 조금이라고 갚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