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박재순의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이라는 역저의 후반부 내용을 독자반응 형식으로 소개하려 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무엇인가 근본적 문제에 봉착했다는 위기감을 많은 시민들이 느끼고 있다. 물론 정치계의 권력투쟁, 기업과 가정의 경제문제 위기와 곤경, 사회계층 간의 갈등, 남북관계의 냉기류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회”라는 위기감이다. 사람다움 곧 인성(人性)을 상실한 사회가 되었고, 냉혹하고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기류가 너무 강해졌다는 위기감이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가 자멸하거나 해체되거나 붕괴될 위험마저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현실을 너무 어둡게 보고 부정적으로만 보는 비판적인 일부 지식인들의 식자우환(識者憂患)이라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볼 때 진영논리를 떠나서 우리 사회, 더 나아가서 인류문명의 위기를 부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저자 박재순의『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은 모든 교육자, 목회자,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선도자, 심지어 교육정책 입안자들 모두에게 새로운 비전과 나아가야 할 교육철학 방향을 제시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저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후반부(5장-8장)는 인성교육의 철학에 강조점을 두는 전반부(1장-4장)에 비교할 때, 인성교육의 방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위대한 교향곡을 듣노라면 변화무쌍한 멜로디의 변화가 진행되면서도, 해당 교향곡의 주악상(主樂想, leit motiv)이 시시때때로 반복하여 나타나 듣는 자들의 심정에 인상 깊게 각인되듯이, 이 책의 후반부(5장-8장)에서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기본 관점이 새롭게 재해석 되면서 반복되고 있다.
그것들은 세 가지인데, 첫째는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알려면 30억 년 진화의 최종 결실물로서 보아야 한다는 진화론적 관점이다. 둘째는 인간이란 어떤 책임을 지닌 존재이냐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서서 천지인 3자(三者)의 덕과 목적과 의미를 통섭하고 실현, 완성 시켜가야 할 존재라는 책임성”을 자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한 한민족의 주체적 생명철학으로서 씨사상가들(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삶과 언행을 주목하고 재평가하고 계승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이 말하는 5가지 강조점
저자의 인성교육 철학과 방법을 담론화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은 5가지 명제로 표현하고 음미하고자 한다.
(i)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이름 붙여진 인간종은 45억 년 지구 진화 과정과 30억 년 생명진화 과정을 압축하여 그 안에 품고 있는 경이롭고도 존귀한 존재이다.
(ii)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사피엔스’(생각함)를 두 번 반복하는 이유는, 인간이란 생각하는 동물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임을 다시 되새겨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생각하는 주체적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형성해가는 존재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iii) 인간은 30억 년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세 겹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몸, 맘, 얼을 지닌 3중적 존재이다. 몸과 맘과 얼은 각각 감성, 지성, 영성으로 대표되는 자율성과 억압되어서는 안되는 독자성을 지닌다. 세 겹 혹은 3가지 서로 다른 차원은 인성을 구성하는 불가분리적 관계이기 때문에, 인간론에서 지난날의 모든 형태의 유물론적, 유심론적, 관념론적, 심신이원론적 인간 이해는 비판극복 되어야 한다.
(iv) 참다운 인성교육은 각각 다른 특성과 재질을 지닌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 자아확립과 능력 발현과 동시에 전체 생명과의 일체감 확립을 달성한다. 사람은 개인이면서 전체라는 자각적 삶에 있다는 말이다. 한 그루 나무이면서 전체 숲이라는 말이다. 자유, 정의, 평등, 사랑, 섬김이 핵심적 윤리 가치가 된다.
(v) 인성교육의 궁극적 목표와 결실은 공존과 상생을 원리로 하는 작은 마을공동체 실현에 있으며 섬김, 배려, 공감, 기쁨, 그리고 자연과 생명체들과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에 있다.
이상 다섯 가지로 요약한 내용이, 저자의 이 책 후반부에서 말하는 담론의 핵심 내용들이다. 필자는 위에서 요약한 다섯 가지 내용을 마음에 두면서 필자가 이 역저에서 받은 가장 인상 깊은 점 3가지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되새김하고 싶다.
첫째, 인성은 몸(감성), 맘(지성), 얼(영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그 3가지는 존중되어야 한다.
동서양 종교와 철학을 막론하고, 20세기 이전까지,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항상 육체의 본성과 그것의 감각적 기능보다는 마음과 이성과 정신을 강조해 왔다.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드 같은 사상적 저항아들이 사람의 육체성, 물질성, 생존 본능성의 중요함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주류적 사상계는 항상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성, 땅과 여성에 대비하여 하늘과 남성의 우위성, 감정과 감성에 대비하여 지성과 이성의 우위성을 강조해왔다. 정직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들과 철학들은 영지주의적 바이러스를 그들 사상 속에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 박재순이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바는, 생명진화론적 정직성을 받아들인다면 몸과 맘과 얼, 다른 표현으로 하면 감성 지성 영성은 모두 매우 중요한 몫과 위상을 각기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중 어느 것도 부정되거나 비하되거나 억압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주는 한 새롭고 중요한 관점이다. 물질에서 생명이 꽃피고, 생명에서 정신이 꽃피고, 정신에서 영성이 꽃피었다고 저자는 말했다. 감정과 감성 없이 지성과 이성 활동은 불가능하며, 감성과 지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승화, 고양, 초월하는 경우에만 영성은 제대로 꽃핀다는 것이다.
“꽃핀다”는 은유에 대하여 필자는 ‘창발’(創發)이라는 어휘를 쓰고 싶다. ‘창발’은 창조와 발생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통전된 것이다. 진화과정에서 물질에서 생명이 출현하고, 생명체 속에서 생각하는 지성이 생겨나고, 지성과 이성을 기초로 해서 자기초월 능력인 영성이 꽃피었는데, 그 과정은 자연과학적인 인과율 법칙으로는 절대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신의 전지전능한 개입사건으로 환원시키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인과율적 발생이면서 창조성의 촉매와 유인과 관여가 합동하여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창발’이라고 본다.
둘째,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체성과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전체성은 통전과 하나를 이뤄야 한다.
저자가 이 책의 여러 곳에서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인간 생명이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개체적 존재이면서 우주적-생태론적-사회적 ‘전체생명’이다”라는 것이다. 개체와 전체는 나무와 숲의 관계처럼 ‘하나’(一)이다. 빈부귀천과 피부색과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고유하고 그 자체로서 존엄하고 자유로운 주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불교의 위대한 사상 내용인 불성론(佛性論)과 유교의 본연지성론(本然之性論)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불교와 유교문화권에서 개체 인간의 가치와 환원불가능한 존엄성을 강조하지 않은 점을 비판한다. 그 점에 있어 기독교와 동학에서는 공동체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 생명의 주체적 개체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류사회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과 기술권력이 강화되면서, 개체 인간의 존엄성은 점점 약화되어 왔고, 전체주의적 사조가 기승을 부려왔다. 파시즘, 나치즘, 코뮤니즘의 대두가 그 실증적 사례이며,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개인의 운명을 국가가 좌지우지하는 형국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개체적 존재로서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 차원에서 말한다면 ‘자유 없는 평등’과 ‘평등 없는 자유’는 공허한 관념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남한의 무한경쟁적 자유민주주의 사회체제와 북한의 집단주의적 사회공화국 사회체제는 인성을 실현하기엔 아주 불완전한 병든 사회체제인 셈이다. 그것들은 부정되고 더 높은 제3의 길 곧 ‘개체와 전체가 동시에 긍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로 변화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그 본질상 자유롭고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성교육에서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와 자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모든 교육철학과 방법은 부정되고 비판된다.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하는 주입식교육, 세뇌교육, 집단교육, 아동성장 단계를 무시한 엘리트 조기교육이나 선행교육은 모두 인성을 파괴하고 뒤틀리게 하는 과오를 범한다.
참교육자의 모범은 어머니와 농부에서 본다. 엄마와 농부는 생명 그 자체가 자기 힘으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기다리고 기대한다. 강제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것은 생명과 정신의 본질이고 인성교육의 핵심이다. 인성교육은 생명교육이다”(336쪽).
저자가 이 책 끝부분에서 인성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로 상생, 협동, 상호 배려,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가 가능한 소규모 단위의 마을공동체, 마을공화국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형태가 주체적인 개체 인간의 깊은 자유와 전체적 생명이 동시에 살아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간이 꿈꾸는 사람다운 삶,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숨 쉬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회공동체로 말하자면 교인 수가 수만 명 되는 대형교회보다 서로가 친밀하게 신자공동체로서 성도 교제가 가능한 200명 전후 규모 정도의 교회공동체가 더 인성 실현에 적합하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대형교회 선호에 마취당한 한국 개신교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셋째, 이 책은 21세기 새로운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삶으로 제시한 한국의 선구자들을 주목하자고 주장한다.
1945년 해방 이후, 그동안 학계의 학문풍토는 외국사상과 사상가를 소개하고 추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특히 신학계에서 그랬다. 논문이나 저작물에는 외국서적과 외국참고 자료를 각주로 많이 달지 않으면 함량 미달 저작이요 논문이라는 풍조마저 있어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21세기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의 범례적 사례로서 당당하게 한국 현대 사상가들 특히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다석 유영모, 신천 함석헌의 인성론과 교육철학, 그들의 삶과 실천을 귀중하게 여기자고 주장하면서 소개한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감정 때문이 아니다. 저자가 600페이지에 걸쳐 논구한 인성의 핵심을 꽃피우고 실현시킬 수 있는 사상이론과 체험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4명은 한국 주류학계에서는 아직도 개화기 시대 사람, 너무나 종파적이고 독특한 생각을 주장하는 인물들로 치부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구체적 실천 교육을 통해 참된 인성의 덕목인 봉사, 배려, 공감 능력, 자기 존중, 공동체 살림, 감사, 평화, 정의, 사랑을 가르친 위대한 선각자들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주체적 한국 사상의 맥락의 재발견이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좋은 역저를 우리 시대에 선물해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칼럼을 쓰는 나의 독자반응(2)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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