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단체가 민원 형식으로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 제정안이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에 의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일부 언론이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에 따르면, 최근 건강한가정만들기운동본부가 자녀들의 건강한 성 가치관 형성을 위한 ‘서울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 제정안’을 민원 형식으로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민원을 접수한 서울시의회 사무처 교육전문위원실이 서울시교육청에 이 서류를 검토하라고 보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업무 절차에 속한다.
문제는 이 민원 신청 문서를 전달받은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이 지난 1월 27일부터 서울지역 유·초·중·고 학교 전체가 열람할 수 있는 업무시스템에 이 내용을 그대로 게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로 인해 교원단체는 물론 언론에까지 노출됐고 야당 소속 시의원과 일부 언론이 그 내용 중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을 콕 찍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 보도를 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일부 언론에서 이 조례 제정안이 마치 서울시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힘 주도로 확정된 조례안인 듯 보도하자 서울교사노조연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등 진보 교원단체들이 발끈했다. 이들은 공개된 문건에 대해 “인간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기본 논리로 삼은 조례안”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기본적 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조례”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의회 측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학부보단체가 민원 형식으로 제안한 안건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마치 조례안으로 확정된 것인 양 왜곡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이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걸 알고 의도적으로 문건을 공개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서울시의회에 의견을 보낸 전학연 등 학부모단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고 올바른 성 윤리를 보장해 달라며 제출한 민원서류가 어떻게 언론에까지 공개될 수 있느냐는 거다. 이들은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에서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과 형법상 위법행위를 했다며 관련 공무원들을 성토했다. 아울러 서울시교육청 일부 공무원들이 반대 여론을 형성하려고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그런데 ‘서울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 제정안’을 둘러싸고 일어난 소동을 보며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다. 학부모단체가 민원으로 제출한 문건은 학생·교직원 등이 지켜야 할 성·생명 윤리의 범위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성관계는 혼인 관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 ‘태아의 생명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 등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중에 어떤 내용이 인간에 대한 혐오와 차별, 헌법에 보장된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일부 언론과 교원단체, 야당에서까지 문제 삼은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만 봐도 이것을 왜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학생과 교직원이 학교라는 규범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는 게 시대의 추세라는 건지, 혹시 이 문건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해 온 보수 기독교계 단체에서 제출한 것이라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일부 언론과 야당 소속 시의원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자 누리꾼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서만 성관계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게 뭐가 잘못인가”, “학생들이 윤리 도덕적으로 준수할 기본 사항 맞지 않나”, “아이들에게 프리섹스를 가르치길 바라는가”, “불륜으로 얼마나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데 이를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침대와 화장실 등이 설치된 밀실 룸카페가 청소년들의 성관계 장소로 탈법 운영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모텔과 유사한 형태의 ‘신·변종 룸카페’ 이용자의 95%가 학생 커플이고 99%가 성관계를 한다는 충격적인 내부 증언에 여성가족부가 뒤늦게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에서 학부모단체가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에 들어갈 의견을 제시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것 또한 시의회의 마땅한 의무다. 그 의견을 최종적으로 조례에 담고 안 담고는 추후의 문제다. 그런데 이런 통상적인 절차 과정에서 일부 공무원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개입한 거라면 적법한 징계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아동·청소년의 성적 결정권을 성인과 똑같은 기준으로 여기는 진보 교원단체와 일부 언론의 인식은 문건 공개를 둘러싼 위법성 논란 못지않게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소극적인 권리로 제한되어야 하고,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취급하거나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20도12419 판결)고 한 대법원 판결과도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성관계는 혼인 관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한 건 학교라는 윤리와 규범의 틀 안에서 바람직한 성의 가치관과 그 기준을 말한 것이기에 하등의 문제 될 게 없다. 이걸 ‘시대착오적’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윤리와 규범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마치 아이들이 마음대로 성관계를 해 좋다는 절대 권리로 인식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