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신학이 가장 정교하게 집대성된 로마서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이신칭의 관점, 혹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풀어내는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 방법이 ‘과연 로마서를 온당하게 읽는 것’인지, ‘혹시 이런 전통적인 로마서 독법과 해석은 지배계금과 결탁된 교회의 시선으로 로마서를 풀어낸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비아 키이즈마트 교수(온타리오 주 트리니티 칼리지 성경 연구 겸임 교수)와 브라이언 왈쉬 교수(트리니티 칼리지 신학)는 로마서를 바울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게 하려고 여러 문학적 수단과 사회역사적 방법, 특히 로마 제국의 역사문화적 환경이라는 해석의 틀을 동원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역동적 유추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맥락과 고대 문서 안에서 보이는 문화적 맥락에서 역동적인 유사성을 식별해내려는 상상의 시도다. 한 예로, 본문이 삶을 왜곡하고 사회적 퇴보를 초래하는 우상숭배를 말하고 있다면 우리 시대의 우상은 무엇일까? 또 그 우상숭배로 인해 오늘날 거두게 되는 사회적 취약점은 무엇일까? 혹은 그 본문이 그 시대의 제국적인 상황 속에서 수치를 당하며 묵살당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다면,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누가 이와 비슷하게 묵살되고 소외당할까? 역동적 유추는 성경 구절과 현대의 문맥을 일대일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다. 역동적 유추는 상상력이 깃든 예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성경적 안목으로, 특히 로마서의 눈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읽는다면 우리는 성령이 이끄시는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해석을 통해 로마서가 갖는 변치 않는 능력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바울이 여기서 선포하는 복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를 불의의 무기가 아닌 정의의 무기로 내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죄가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불의한 노예 제도에 뿌리를 내린 제국에서 우리는 정의의 종이 되어 우리 몸과 상상력, 경제활동, 정치 생활, 문화 활동, 성의 표현, 가족 구조, 지적 이론, 일상의 업무를 정의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게 정의를 구현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의 삶은 세례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약적 정의를 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가 실제로 어디서 살고 있는지 근원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로운 삶을 살 때에만 우리가 진정 누구에게 속했는지 증거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의의 종이 되었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땅을 파괴하여 운영되는 경제체제(어떤 경제체제든지)를 신뢰한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피조물을 파괴해야 유지되는 생활방식을 유지한다면, 우리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숭배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피조물을 괴롭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믿는다는 증거다. 모든 점을 고려해볼 때 우리의 경제생활과 생활방식은 언제나 그 땅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유일한 장소다”며 “우리는 점점 더, 예수나 바울 누구도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찾도록 도와주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 나라는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와 샬롬의 좀 더 급진적인 비전, 경계를 넓히는 비전, 우리 중 몇 사람을 확실히 불편하게 만들 비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키이즈마트 교수는 캐나다 맥길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전공하던 중 톰 라이트의 추천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옮겨 바울신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와 위클리프 칼리지의 성경 연구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다. 왈쉬 교수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철학을, 기독교학문연구소와 맥길 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세계관 연구 주임교수로 가르쳤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기독교개혁교단 소속의 교목으로 있으면서, 트리니티 칼리지와 위클리프 칼리지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제국과 천국>, <그리스도인의 비전>, <세상을 뒤집는 기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