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와문화)가 30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신에 관한 소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무신론자가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첫 관문은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회심이 있고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다”며 “하지만 유신론적 신앙으로의 전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밑그림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이른바 ‘가나안’ 성도와 탈교회 현상이 심각한 이슈로 제기됐는데, 그 배경에는 일반인들의 비종교화라는 흐름이 있고, 비종교화의 중심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약화가 있다”고 했다.
이어 “2022년 12월에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에서는 “‘별난 리서치’ 결과를 발표했다”며 “신은 존재한다고 보는 응답은 48퍼센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3퍼센트, 그리고 모르겠다는 응답은 19퍼센트이다. 일단 이 결과는 2021년 5월에 발표된 한국갤럽의 종교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응답이 39퍼센트였고, 존재하지 않는다가 47퍼센트였던 것과는 다소 상반된 수치”라고 했다.
또 “다른 기관의 조사이지만,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신을 믿는다는 응답이 갤럽의 조사보다 9퍼센트가 올라간 것이다. 갤럽은 1,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벌였고 정기적으로 해오던 연구이지만, 한국리서치는 1,000명에게 문자와 이메일을 수반한 웹 조사여서 양쪽의 결과를 대등하게 비교, 평가하기는 힘들다”며 “신은 존재한다는 응답은 총 48퍼센트였지만, ‘단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21퍼센트이고, ‘하나가 아닌,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26퍼센트로 나왔다. 갤럽의 2021년 조사에서는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응답 항목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리하자면,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나의 신이 존재할 가능성, 여러 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모두 감안해서 물었을 때, 절대자로서의 신이 존재하느냐(갤럽 방식)는 질문에 대한 응답보다 더 높게 나왔으리라는 짐작”이라며 “이 문항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인에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기독교 세계를 기반에 두고 있는 서구사회와는 다를 수 있고, 이는 신과 인생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기대와 전망을 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화에는 오랜 기독교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서구사회와 같이 우주를 통치하고 섭리하는 절대 신에 대한 전제가 없었다”며 “근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사회는 이성과 과학으로 세계에 대한 설명체계를 구축하며 세상을 경영하는 신의 은총과 질서를 배제하였고, 그것이 인본주의 세속화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비록 20세기 중반 이후로 폭발적이고 압축적인 교회 성장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와 같은 유신론적 세계관이 한국 사회의 습속을 형성하긴 힘들었다”며 “따라서 한국 문화의 고유한 현세지향적이고 혼합종교적인 성향이 여전히 강한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고 했다.
또한 “그러한 마음의 틀은 복음의 변증을 위해서 마주하고 돌파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모든 결핍에는 그 배후에 갈급한 열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절대적인 하나님과 유일하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신앙은 오히려 그와 같은 신앙에 저항하는 마음의 틀을 근본에서 변혁시키는 해답이 된다. 팀 켈러가 말한 것처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은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서 중심부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최근 큰 인기를 얻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돼서 가해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줄거리이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악의 결속체인 가해자들이 각각 다른 종교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폭력 주동자의 어머니는 무속신앙 신봉자이고, 가해 동조자는 중견 교회 목사의 딸이며, 또 다른 가해자의 예비 시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이러한 설정이 얼마나 현실적이냐를 떠나서, 사실상 이 드라마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종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내가 아플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이 질문은 기독교 전통에서 고통의 문제와 신의 섭리에 관한 고전적 물음”이라며 “또한 이 질문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서 인간의 본성적인 탐구이기도 하며, 특히 비종교화·탈교회화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에 관한 신앙을 제시하려 할 때도 관련지어서 고민하게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 “나의 가정, 경제 문제, 일과 경력, 건강, 인간관계 등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이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바로 그 땅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할 곳”이라며 “선교학자 폴 히버트는 비서구 문화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즉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실제의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중간영역’에서 신앙의 가치와 효능이 입증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근대 서구 기독교는 하나님과 신앙을 초월과 내세의 형이상학적 영역에 가두었고, 이것이 곧 실제 삶의 문제들이 중첩한 중간영역을 배제했다고 지적한다(폴 히버트, 선교현장의 문화이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생한 고통과 슬픔, 고민과 희망이 교차하는 일상에서 경험하며, 그 일상을 변혁시키는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현안과 필요를 해결하셔야만 존재 입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욕망을 채우시는 하나님은 더더욱 성경적 신앙과 무관하다”며 “그러나 그 어떤 삶의 고민과 관심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세지향적이고 혼합주의적인 한국 문화에서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려면 때로 복음의 현실적 효능과 선택으로서의 신앙이라는 가치를 제시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적 접촉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대한 돌봄으로부터 절대 주권자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진정한 필요가 채워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되어야 한다”며 “신의 존재에 관한 믿음을 묻는 조사에서 항상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성과 유일성, 그리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확고하게 믿는 집단이다. 견고한 복음적 기초는 모든 사역의 전제다. 그래야 세속적 문화의 한복판에서 복음을 현실적으로 전달하면서도 복음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