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3일(현지 시간) 북한인권특사에 줄리 터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과장을 지명했다. 집권 3년 차를 맞은 바이든 정부가 6년간이나 공석이었던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한 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함께 인권 문제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인권특사에 지명된 줄리 터너는 한국계 여성으로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에서 16년을 근무하면서 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전문가로 알려졌다. 우리에겐 지난 2017년 12월에 공개된 ‘인권의 영웅들(Human Rights Heroes)’이란 동영상에서 탈북 여성 지현아 씨를 직접 인터뷰한 미 국무부 외교관으로 유명하다.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2004년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서 설치된 자리로 미국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 수립과 집행 전반에 관여하는 대사급 직책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가 오바마 행정부의 로버트 킹 특사가 2017년 1월 퇴임한 이후 6년간이나 공석이었다는 사실은 좀 아이러니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선 북한의 비핵화 문제로 두 차례나 북·미 정상 간에 회담이 진행되면서 북한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계속 미뤄져 온 건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초기에 “북한인권특사를 재임명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우선 과제로 들고 나왔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이와 무관하게 별도로 다뤄나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최우선 목표지만 그렇다고 인권을 덮어두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의 국가적 인권 탄압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해 온 건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미 국무부가 지정하는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에 북한을 21년 연속해서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하게 된 건 북한 인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증명한 것이다. 다만 한국은 물론 미 조야에서도 끊임없이 요구해 온 사안을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어 실행에 옮긴 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그런 만큼 미국이 다소 늦게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했더라도 이제부터 북한 인권에 대한 한·미간의 공조가 본격적으로 증대될 거란 전망이 있다.
정부는 미국이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앞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대미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24일 “한미 양국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으며, 정부는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지명을 계기로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한미 간 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한정의연대 등 북한 인권단체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났다. 이들은 “한·미 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도외시했던 과거의 비균형적 대북인권 정책을 지양하고,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매커니즘과 협력하는 선순환 구도로 들어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해야 할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미국 북한인권특사에 지명된 한국계 여성 외교관에 북한 인권단체들이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 3명 모두 공교롭게 여성이란 점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런 공통분모가 향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유대와 협력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란 견해도 있다. 일단 미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에 총력을 기울이기엔 6년이란 공백이 너무나 커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북한 전문가라지만 무명에 가까운 국무부 과장급 직원을 대사급으로 영전 발령한 것도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국회가 지난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건 북한 주민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데 목적을 뒀다. 그런데 ‘북한인권법’을 실질적으로 시행할 핵심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되고 말았다.
그런 배경에는 통일부 장관과 여야가 12명의 이사를 추천하게 돼 있는데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를 회피해 온 데 있다. 그렇다고 여당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와 연구, 정책개발 수행 등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이 임명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6년이나 공석으로 있던 북한인권특사를 지명한 건 만큼 북한 인권 문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이어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임명으로 끝나선 안 된다. 자리에 사람을 앉힌 이상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리 국회 또한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에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된다. 법에 명시한 ‘북한인권재단’을 조속히 출범시키는 것이 박해받는 한 핏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