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원로 박영선 목사가 최근 유튜브 채널 ‘잘 믿고 잘 사는 법’(잘잘법)에 출연해 ‘성경을 보는 관점’이라는 주제로 나누었다.
박 목사는 “기독교를 특색짓는 두 단어가 ‘믿음과 사랑’이라고 했다. 그런데 믿음과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고 그랬다”며 “도덕성과 윤리에는 상대성이 없다. 최고의 경지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마지막 심판자가 돼야 하는 건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릴 보고 상대가 되자고 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믿음과 사랑을 나눌 상대가 되려면 대등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대등하지 않으면 동정이 되고, 믿음도 대등하지 않으면 강제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러므로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발성을 가지려면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유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역을 할만한 실력있는 자리에 가려면 상당한 경지에 가야 한다”며 “상당한 경지에 가려면 경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분별·통찰·지혜라는 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일에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은 ‘도덕과 윤리’이다. 왜냐하면 도덕과 윤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만들면 그것은 곧 ‘자기의 의’가 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만 섬기면 되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등 왜 이렇게 못났을까”라며 “백성들이 해달라는 것을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는 것이다.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만사형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겠다고 하는가. 하나님과 상대역을 만들겠다고 하신다”며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이 나온다. 큰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줄 알았지, 자기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상속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의 회개와 중생의 기쁨은 거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자라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우상이란 내 힘으로 안 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는 신”이라며 “내 힘으론 결과를 얻을 수 없고, 그 대신 내 말을 들어줄 만큼 다 바치지만, 섬기는 자들을 위한 계획·의지·간섭도 없다. 이 싸움이 계속된다”고 했다.
이어 “구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진면목을 보이시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는 생각의 최대치까지만 하자는 것이며, 하나님은 ‘더 가자’고 하는 것이 구약의 이야기다. 출애굽 사건, 바벨론 포로 등의 흑역사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너희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라며 “아담이 왜 불순종했는가. 최고가 되길 바라는데, 그것은 지위의 싸움이 아니라 가치와 신분의 싸움에서 타협해버린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구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약으로 오면서 그 아들이 오신다. 인격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은 무인격적 개념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의지’가 있다. 우리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찾아오고,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우리의 인생에 구약과 신약이 범벅이 돼서 반복된다”며 “그 관점으로 읽는 것이 성경을 읽는 법이며, 자기 인생을 해석하는 법이다. 인생에 전후가 있고, 굴곡이 있고, 억울하며, 원한이 쌓이고, 부서지는 등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 신앙 안에 쉽게 해결해버리고 싶은 것들”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뭐든지 바칠 테니까 원하는 걸 주십시오’하는 우상은 뻔하지만 구약 내내 반복된다”며 “‘예수님’을 부르고 울며 그 다음에 모든 일이 풀리길 바라는 이상한 신앙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답이 없을 때, 그때가 중요하다. 답이 없는 것을 원망하고, 슬퍼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시편이며, 여기엔 찬송으로 가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비명이 있어야 하는지가 공평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라는 존재’와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는데, 하나님은 권력으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기대와 소원보다 더 큰 것을 만들려고 일하시는 분이며, 그의 아들까지 주신 분임을 아는 것, 이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라며 “그리고 신앙의 벗들과 원망을 나누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했다.
아울러 “‘자기가 올라가는 산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 모두가 정당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하나님이 간섭하는 인생 같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정상적으로 가는 것”이라며 “납득하는 시기는 중간에 고갯마루가 나와서 아래가 보일 때, 내가 이만큼 올라왔다는 걸 보게 된다. 그 다음에 다시 계속 산으로 올라가는데 똑같은 산행을 반복해야 한다. 제자리를 걷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다음 고갯마루로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 아까하곤 또 다른 것이다. 그렇게 크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