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앙생활: 섭리란 무엇인가?(2)

오피니언·칼럼
설교
  •   
고린도후서 12:7~10
이태희 목사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찬송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 사역이 하나님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여”와 “우리를 위하여”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서 행하시는 일은 곧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쁘시게 함으로서 우리의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4:15)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뜻은 이뤄질 수 밖에 없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위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음을 믿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직관적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항상 다르다. 그러나 항상 높게 다르다. 항상 더 좋게 다르다. 언제나 더 완전하게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에게 좋은 방식으로, 우리의 유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비록 우리의 상황이 우리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뤄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고, 항상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바로 이 기쁨과 감사가 우리의 기도 안에 항상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항상 감사 하겠나이다. 항상 기뻐 하겠나이다. 낙망 하지 않고 항상 부르짖겠 나이다.” 바로 이와 같은 서원, 서약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며, 그리고 그 뜻은 항상 우리에게 유
익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히 이해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사탄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 사탄 마귀가 이 세상은 물론 이 땅의 성도들과 교회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5:8-9)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런 사탄 마귀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도대체 왜 계속해서 사탄이 일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도대체 사탄을 통해 일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탄을 사용하셔서 사탄을 타도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탄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이유요, 사탄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며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일에 사용하신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모든 노력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사탄 마귀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압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비록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지만, 비록 사탄 마귀가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탄 마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욱 강력하게 세워 가시고,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강력하게 이뤄 가신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이와 같은 지식을 갖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기뻐하며 찬송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기쁨의 찬송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 바울에게는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눈의 질병”이라고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도 말하지만, 그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육체의 가시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치명적인 고통을 가져다 주는 “질병”이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질병을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그 질병이 가져다 주는 큰 고통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그 고통스러운 질병을 통해 자신의 사명과 사역을 끊임없이 훼방하고 공격하는 사탄의 역사를 피부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한다. 사도 바울의 강력한 복음 전도, 말씀 선포, 교회 개척, 선교 여행. 여러분,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이방 세계에 퍼져 나갔는지, 사도 바울을 통해 서구 문명의 역사, 아니 전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보면 사탄 마귀가 얼마나 사도 바울의 사역을 두려워했고 증오했을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사탄 마귀는 사도 바울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사탄 마귀는 자신의 총력을 기울여서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방해하고 공격했다. 유대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게 하고,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로부터 위험을 당하게 하고, 투옥을 당하게 하고, 거짓 비방을 당하게 하고, 모독을 당하게 하고, 모함을 당하게 하고. 사탄 마귀는 사도 바울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끊임없이 사도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보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육체의 가시”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사도바울의 질병을 통하여 사도 바울을 아주 효과적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사탄의 공격이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7)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