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별세한 故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 목사)의 추모예배가 20일 오후 4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날 예배에는 손봉호 장로(고신대 석좌교수), 박형용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등 고인과 함께 사역한 동료들과 임원택 교수(한국복음주의신학회), 이광희 교수(평택대, 웨스터민스터 동문회장) 등 고인의 후학 및 제자들이 다수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예배에선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사회로 노영상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전 총장)이 기도했다. 노 목사는 “고 이종윤 목사님은 주님의 일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분”이라고 했다.
박형용 교수는 말씀을 전하며 “성도는 죽음이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라며 “죽음은 더 좋은 나라로 가는 관문”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은 아담이 실패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셔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며 세상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며 “예수님께서 모든 세상의 통치를 멸하시고 세상을 하나님께 바치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복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며 “고 이종윤 목사님은 노영상 목사님의 기도처럼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셨다. 하나님도 아실 것”이라고 했다.
예배 후 ‘추모의 시간’에서 조사를 전한 손봉호 교수는 고 이종윤 목사와의 인연과 사역의 내용을 설명하며 “신학교에서 일을 척척 잘 해내서 주변사람들이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또 “할렐루야교회를 개척할 때는 내가 사역하던 교회하고도 제법 떨어진 곳에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그의 교회 개척에 대해 선배인 내게 허락(교회의 위치가 가깝다고 생각해서)을 받으러온 신사”라고 했다.
손 교수는 이어 “훌륭한 설교자이자 신사적인 목회자”라며 “우리는 슬퍼하기보다는 그의 신사적인 목회를 이어받자. 지금은 그의 삶을 가능한 만큼 닮으려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했다.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교수)의 조사는 이 교수의 사정으로 인한 불참으로 다른 이가 대독했다. 이 교수는 “가정에서는 충실한 가장이며, 교회에서는 충성스러운 목회자로 일생을 선한 목자로 살았다”며 “학교에서는 존경받는 훌륭한 스승이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그에게 기대어 안식을 얻고 개혁주의 신학을 이어갔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그로 인해 바깥세상에 눈을 뜨고, 넓은 세상을 봤다”며 “고 이종윤 목사님은 우리에게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말 것’을 강조했다”라고 했다.
그는 “교회 쇄신과 ‘한교단 다체제’를 주장하며 장로교의 연합과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공산권 선교, 탈북자 인권 등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년기에는 많은 노력을 했다”라고 했다.
이어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때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라고 했다. 고 이종윤 목사님은 하나님을 평생 그리워했는데,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데리고 가셨다”라고 했다.
이광희 교수(평택대, 웨스터민스터 동문회장)는 “손봉호 교수님이 안식년으로 네덜란드에 1년 가시면서, 고 이종윤 목사님께 1년간 서울영동교회 설교사역을 부탁하셨다. 그때 나는 그 교회의 전도사로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자랐다”며 “또한, 고 이종윤 목사님은 웬스터민스터에서는 동문으로 모교를 정말 사랑하셨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신학을 하실 때도,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 사이에 ‘양자택일’적 접근을 싫어하셨다”며 “‘이것과 더불어, 저것도’의 정신을 가지고 계셨다”라고 했다.
그는 “웨스터민스터의 전통은 본질에는 강한 경향이 있지만 상황에는 약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목회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쉬움이 있다”며 “고 이종윤 목사님은 교회의 ‘본질은 하나’지만 ‘상황은 다양’하여 서로 ‘존중하며 연합’할 것을 강조했다. 교단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창의적인 노력을 하셨다”고 했다.
이어 “고 이종윤 목사님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적 극단’에 치우친 현 사회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충실하며 상황에 적합한 적용을 하셨다”라고 했다.
임원택 교수(백석대, 한국복음주의신학회장)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 사는 것도 힘든데 신학자의 삶까지 사신 분”이라며 “복음주의신학회의 회칙을 제정하신 분으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산파 역할을 하셨다”라고 했다.
이어 “조사를 쓰며 고민하다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칼빈’이 떠올랐다. 칼빈이 제네바 시절의 4분의 3은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다”며 “칼빈과 비슷한 삶을 사신 고 이종윤 목사님도 칼빈처럼 인내하셨다.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했다.
유족 대표로 홍순복 사모(고 이종윤 목사의 처)는 “많은 일을 하다가 가셔서, 남겨진 일들이 많다”며 “그가 남긴 많은 양의 설교 원고와 메모의 정리작업을 살아 있을 동안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홍 사모는 “교계와 학계가 ‘정도’로 갈 수 있도록 앞으로 여기 있는 분들이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