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 극복의 열쇠, 목회자의 눈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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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국교회에 위기를 닥쳤다고 한다. 과거에도 몇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월례회에서도 한국교회에 밀어닥친 위기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한국교회, 다시 부흥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과거 한국교회가 부흥운동으로 찬란한 꽃을 피웠던 때를 회상하며 ‘다시 한번’을 외쳤다.

이덕주 교수(전 감리교신학대학교)는 ‘다시 근본으로(Re- Ad Fontes)’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국교회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당위성을 피력했다. 그는 “특히 1903년 원산부흥운동에서 시작해 1907년 평양부흥운동을 거쳐 1909년 백만구령운동에 나타난 초기 교인들의 신앙 열정과 헌신의 이야기는 위기상황에 처한 오늘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 운동에 자극이자 용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국교회가 오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에 있어선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한 듯했다. 그건 오늘 한국교회가 맞고 있는 상황이 그만큼 낯설고 고민 또한 깊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날 제기된 논점에서 보듯 한국교회에 밀어닥친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위기가 왔다는 덴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언제까지 갈 것인지에 대해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단지 몇몇 대 교단의 교세가 최근 계속해서 줄고 있고 코로나가 쐐기를 박는 정도가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상당수의 교회가 교인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에 이르게 된다면 사정이 좀 다르다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초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는 부흥기를 이끈 한국교회가 오늘 그때와는 반대되는 고민에 빠지면서 떠올리는 향수가 있다. 바로 “어게인 1907”이다. 즉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회상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외침이다. 다만 그런 구호가 한국교회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긴급 처방이 됐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 번의 기적적인 부흥운동을 경험했다. 1903년 원산 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909년의 백만인구령운동이다. 이 세 번의 부흥운동은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평양 대부흥운동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된다.

그런데 과연 전국적으로 확산한 당시의 성령 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이 뜨겁게 임하셨다고 하더라도 평양 장대현교회가 그 중심이 될만한 근거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거다.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03년 8월에 원산지역 주재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두 여 선교사가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어 공개 기도회를 가졌다.

그때 그 여선교사들은 의료 선교사 하디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3번의 강의를 부탁하게 된다. 그런데 하디 선교사가 부탁받은 강의를 준비하던 중 스스로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 영국인이라는 백인우월주의,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통렬히 회개했다.

하디 선교사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동안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그의 죄악과 잘못을 낱낱이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했다. 이런 하디 선교사의 회개 고백은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로, 다시 한국인들의 회개운동으로 이어져 확산되면서 원산부흥운동에 이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촉발시킨 것이다.

근래에 와서 한국교회에 이와 유사한 회개운동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14년에 세월호 참사 당시 104세의 방지일 목사를 비롯해 백발이 성성한 여러 교단의 내로라 하는 원로목사들이 “나부터 회개”한다며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일도 있었다. 못내 아쉬운 건 그런 회개운동이 한국교회 전반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그냥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원로목사들이 자신을 향해 회초리를 들자 일각에선 퍼포먼스나 눈요깃감으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오죽하면 자신에게 매질할 생각을 했겠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교회 어르신들이 사회와 교회에서 벌어지는 갈등, 분열 등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회개한다며 자신을 매질한 건 함부로 평가될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뼈저린 반성과 뉘우침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선한 영향력이 되기에 힘이 모자랐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한복협 강연에서 이덕주 교수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기독교에서 회개는 ‘위로부터 아래로’ 이뤄진다. 목사가 회개하면 교인들이 회개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목사의 눈물에 있다.”

원로목사들의 회개운동이 담임목사를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에게 이어졌어야 했다. 그래야 성도들에게까지 연결되고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마중물이 됐을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목사의 눈물에 있다는 말을 허투를 넘겨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