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교회 지난 15일 주일오후예배에서 히즈윌 김동욱 찬양사역자가 찬양과 함께 믿음의 간증을 전했다.
김동욱 형제는 우리가 엎드릴 때 주님이 일하신다는 고백을 첫 찬양으로 나누고 싶다며 첫 곡으로 ‘그저 엎드리는 것’을 찬양했다. 그는 “올 한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매일 걷는 삶이 정말 복되고 귀한 삶이라는 것을 고백하기 원한다. 우리가 엎드리고 무릎 꿇으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이 다 주님 안에 평탄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고백한 대로 우리는 엎드리면 된다. 우리가 무릎 꿇으면 주님은 우리를 업고 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길 가운데 동행하실 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오늘, 이 땅을 밟았다가도 내일 주님을 볼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사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이다. 새해 하나님 앞에 영원한 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순례자의 모습, 천국을 소망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곁눈질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만 붙잡고 살아가는 올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자”며 ‘곁눈질’을 찬양했다.
김동욱 찬양사역자는 KBS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통해 데뷔했다. 그는 “올해 데뷔한 지 23년이다. 가을동화 OST 수록곡을 부르면서 제 목소리가 세상에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기도가 똑똑히 기억난다. 그때 하나님께 서원한 꿈이 찬양사역자였다. 노래도 할 줄 모르고 재능도 없어 보였는데 제 꿈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이루셔서 지금 여러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신념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그 신념보다 더 귀한 믿음이 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제 안에 그때 큰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찬양사역자로 헌신하고 드릴 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게 해달라는 제 믿음을 하나님께 드렸다”며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간증했다.
김 형제는 “서울의 유명한 대학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는데 지원 필수 조건이 TV에 한 번 나오는 것이었다. 저는 OST라는 초라한 경력 하나를 가지고 나왔는데, 시험장에는 산더미 같은 경력을 쌓아둔 100명의 지원자가 있었다. 그때 제 믿음이 너무나도 연약해졌다. 두려움에 가득 찬 상태로 면접을 봤다. 노래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 처음 드렸던 믿음인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부른 노래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고 했다.
이어 “찬양을 마치고 나니 제 생각과 다르게 시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여기가 교회야? 교회 오빠야?’라는 소리가 귀에 들려서 풀이 죽어 있는데, 교수님도 이것 가지고 되겠냐며 나가보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는 연예인을 보러 온 팬들, 기자들이 가득했다. 우는 모습을 가리면서 내려오는 그 길은 민망함과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했다.
이어 “대학에 떨어졌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나의 믿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얼른 대학에 등록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놀란 건 100명 중에 두 명이 노래로 뽑혔는데 한 명이 저였고, 나머지 한 명은 박효신 씨였다. 그 자리에서 웃음거리도 되고 수모도 받고 부끄러웠지만 하나님께서 내 고백을 받으시고 기적을 행하신 것”이라고 고백하며 “저는 시험 인생이다. 중요한 순간에는 다 찬양을 하고, 인터뷰할 때 제 정체성을 숨김없이 다 이야기했다”고 했다.
김동욱 찬양사역자는 다음세대를 향한 권면도 전했다. 그는 “믿음을 주님께 드리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재능과 주님께 서원했던 그 꿈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그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귀한 곳에 세우실 줄 믿는다며 다음세대. 그 믿음을 드리는 다음세대가 되길 소망한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걷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기에 그 능력의 주님을 붙잡을 때 일렁이는 파도를 헤쳐 나갈 줄 믿는다”며 ‘믿음이 실제가 되는 순간’을 찬양했다.
그는 “저에게 9살, 7살짜리 딸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주님의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좁은 집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오면 아이들은 아빠 손을 잡고 걷기 원한다. 제고 손을 잡고 걸으면 아이들은 뛰기를 원하고 저도 같이 뛴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넘어지지만 저는 넘어지지 않고 넘어진 아이를 붙잡아 다시 일으켜서 행복하게 그 길을 걷는다. 이 모습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는 보이지 않는 든든한 손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인생에 거친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날 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그 손이 자녀 된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 우리가 그 손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선 놀라운 힘을 주신다”고 했다.
이어 “저는 광야 같은 인생의 고독한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저도 의지할 곳을 잃어버리면서 방황도 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도 했었다. 그런 삶 가운데 선택한 미국 유학 생활은 더 고달프고 힘들었다.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음대에 찬양을 통해서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은혜로 문을 연 학교인데 학교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말도 안 통하고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생활할 때도 있었다. 육신이 지친 시간보다 더 힘들었던 건 하나님께서 나를 떠난 것 같은 시간이었다. 기도해도 하나님을 전보다 더 깊이 만나지 못하고 예배 때마다 은혜가 내 안에 충만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면서 저는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죄를 짓거나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주님이 없는 것 같은 무의미한 삶이 저에겐 광야 같았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시간을 보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시면서 완전히 회복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유학 생활이 순탄해지고 미워하고 원망했던 가족들이 용서가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힘든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처음 받았던 찬양이 ‘광야를 지나며’다. 이 가사 한 절 한 절이 저의 이야기 같아서 이 찬양을 무조건 제가 부르고 싶다고 고백했다. “찬양을 부르게 됐는데, 이 광야를 걷는 게 정말 은혜였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다. 히브리어로 ‘다바르’가 말씀이란 뜻인데 그 광야에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 보석 같은 시간을 숨겨 놓고 계시다. 우리가 비록 광야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 함께하시고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광야를 지나며’ 1절은 우리가 걸었던 광야를 생각하며 부르자. 2절은 웃으면서 부르자.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만 머무르게 두지 않으신다. 반드시 걷게 하시고 그곳을 은혜의 땅이라고 고백하게 하신다. 희망을 가지고 선포하자”며 ‘광야를 지나며’를 찬양했다.
김동욱 형제는 “오늘 했던 고백이 다 믿음에 관한 고백이다. 우리가 살아갈 때 정말 필요한 것이 주님 안에 믿음인 것 같다. 세상에서 믿음을 어떻게 지키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저는 지금도 제가 처음에 서원했던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겠다는 그 고백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제가 한 대학의 실용음악과 교수로 임용됐다. 만 명 정도가 임용 공고를 봤다. 저는 마지막 총장님 면접의 자리에서 저를 찬양사역자라고 소개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드리는 일이 내 삶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을 끝까지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사역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찬양 많이 듣고 말씀 많이 듣고 믿음이 날로 날로 성장하는 올 한 해가 되길 소망하길 바란다”며 ‘믿음이 없이는’을 찬양했다.
김 형제는 “마지막 찬양으로 1집 앨범 타이틀곡 ‘금을 만드는 시간’이란 곡을 나누고 싶다. 가사 중에 ‘고난은 금을 만드는 시간 정금으로 빚어질 믿음의 세계’라는 글이 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다고 바라보는 금보다도 연단의 과정을 통해 빚어진 인생을 더 귀하게 보신다. 그 가운데 심어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 우리의 삶을 금으로 만드는 시간으로 빚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하자”며 ‘금을 만드는 시간’을 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