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 이어 작년에 열렸던 최초의 기독교 변증 서바이벌 대회 ‘홀리 컴뱃’에서 닉네임 ‘아델포스’로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 김요환 목사(구성감리교회)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아래는 김 목사와의 일문일답.
Q. ‘홀리 컴뱃’의 장점과 단점은?
A. 변증의 장점은 불성실한 목회자들을 긴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 중에 대충 악기 메고 겉멋만 든 사역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왜냐면 ‘홀리 컴뱃’의 주최자 오성민 대표가 평신도이기 때문이다. 평신도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목회자는 그런 성도들을 양육하고 은혜 끼치고 가르치고 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하게 됐다. 동시에 신학교 후배들에게 “평신도가 저 정도면 너희들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겠지?” 압박을 하기도 했다(웃음). 예전에도 주석 전집 사놓고 계속 질문하시는 장로님들이 계셨다. 이제는 앞으로 청년들이 그럴 것이다. 이제는 청년목회 한다고 만만하게 덤벼들면 안 된다. 오히려 최고 수준의 신학도를 청년목회를 시켜야 한다. (교회들이 사역자 선별할 때) 그냥 차량 운행 잘하고, PPT 잘 만들고, 영상편집 잘하고, 악기 잘 다루면 우선으로 친다. 그러면 교회가 망한다. 정말 예리하고 논리정연하게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사역자에게 청년부를 맡기지 않으면 교회는 무너진다. 특히 대형교회들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데 이유가 있다. 이들이 가나안 성도가 된다. 어르신들은 괜찮다. 왜냐면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코로나로 오시지 말라고 해도, 새벽기도 꿋꿋이 나오신다. 그런 분들에게는 오히려 신앙을 배워야 한다. 오히려 그런 어른들께 머리 숙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은 설명 듣기를 원한다. 설명을 듣는다고 한 번에 변화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진짜 살아계신다는 것을 본인이 마주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강제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언 받아라” 이렇게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내려 놔야 한다.
단점은 아무래도 질문 해오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신앙인들이 질문을 통해 신앙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세계가 무너지고 흔들린다고 느낀다는 점일 것이다. 잘 신앙생활을 해오던 분들, “성경이면 그냥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했던 신앙인들에게 자꾸 “성경에 공룡이 있을까?” 아니면 “태양이 멈추고 지구가 도는 것인데, 왜 성경에서는 태양이 돈다고 나오나?” 이런 것을 질문하면, “귀찮게 그런 것 왜 묻나” 이런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그대로 존중해 드려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지는 이유도 질문이 많은데 교회가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홀리 컴뱃’이 유익이 많다고 생각을 한다. 연세가 80정도 되신 어르신들이 ‘홀리 컴뱃’을 보시지는 않지 않는가. 주로 시청층이 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홀리 컴뱃’ 같은 일들이 개교회로 확대되면 좋겠다. 교회 사역자들이 수련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나, 청년 리더들을 대상으로 ‘홀리 컴뱃’을 시켜본다든가, 아니면 (담임 목회자분들이 면접을 볼 때) 목회자 후보생들을 딱딱하게 앉아서 이력서 보면서 질문해 보는 형태가 아니라 교역자들에게 서로 질문을 주고 답변하는 ‘홀리 컴뱃’을 시켜볼 수 있다. 그러면 목회자들도 안수식 전까지 계속 고민할 것이고, 자기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예능적 요소도 있고 즐거움이 있지 않겠나 싶다. 이것이 확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오성민 대표가 시즌2를 기획하고 있는데,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다.
Q. 시즌 2에 대한 언급을 하셨다. 어떤 기대가 있으신지?
A. 시즌1에서 충분히 질문을 많이 했고 많은 말을 했는데, ‘굳이 시즌2를 만들어야겠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메시지는 같아도 메신저가 바뀐다. 또 다른 스피커들이 나오고 특히 신앙적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이 좀 있다. 좀 더 분명한 색깔이 있는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
예를 들어 “변증이 필요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이런 것 왜 하는가?” 따져 묻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뒤에서 키보드만 두들기지 말고 나와서 얘기를 하면 좋겠다. 이것은 공정한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 출전할 때 “내가 여기 출전해서 손해 보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중간까지만 해도 ‘이거 공정하지 않다’라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판정단들의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다. 그런데 편파적이지 않더라. 왜냐면 주최자들도 본인이 기획을 하고 영상을 외부에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편파적으로 대회를 만드는)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혹시라도 불만이 있는 분들이 직접 도전을 하고 출전에 대한 용기를 좀 가져도 좋겠다.
Q. 한국의 복음주의 지성을 추구하는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A. 청년들은 질문이 많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포기하고 “덮어놓고 믿어라”라고 하는 것은 맹신이다. 그런 ‘맹신적 믿음’을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 또 한편으로 급진적이고 신앙에 대한 파괴적인 이야기를 하면 자기가 성장해 왔던 ‘삶의 가치와 신앙적 전통’이 부정되기 때문에 그 역시도 좋아하지 않는다.
해답은 복음과 지성이 잘 융화된 ‘복음주의 지성인’들이 많이 등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과 질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과격한 주장은 많이 나온다. 세상에서 공격해 오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흔들리고 있는데 “그냥 믿어, 너 사탄 들렸어!” 이러면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의심해 볼 수 있는 과정을 더 믿음이 단단해 질 수 있는 계기와 발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신학의 역할이라고 본다. 신학은 신앙을 파괴하거나 나의 ‘교단적 색깔’을 지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다. 나의 신앙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의 정리된 이론을 가져다 쓰는 것은 좋은 것이다. 건강한 것이다. 성도들도 그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본다.
16세기 종교개혁이 번역되지 않은 성경을 번역해 주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종교개혁은, 혹은 우리가 개혁해야 할 개신교의 요소는 성도들과 대중에게 신학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건 자유주의 신학이니까 볼 필요 없다, 이건 금서야!” 혹은 “이것은 우리 교단의 신학이 아니니까 보지마!”, “칼빈주의는 답답한 것이니까 보지마!”, 이런 것이 아니다.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 교단의 신학과 나의 목회적 신학은 이것이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학적 컬러에 맞는 신앙적 방향성을 찾아가라”라고 던져 줘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이 ‘만인제사장’을 얘기했다면, 이제는 ‘만인신학자’, ‘만인변증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음 전파할 때 더 유리하다. 성도들이 복음 전파를 더 잘할 수 있다. 복음의 구호를 더 강하게 외칠 수 있고, 신앙하는 것에 있어서 확실하게 할 수 있다. 그냥 맹목적인 신앙과는 다르다. (교인들이) 한 번에 확 삐져서 교회를 옮기는 이런 일들이 없어질 것이다. 내 논리와 이성으로 교회 공동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이 스스로 설명이 됐고,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나는 저 사람 때문에 기분 나빠서 교회 안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적 사고를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이 한국교회에 정착돼야 한다고 본다.
Q.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영적 전쟁의 영역이 문화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예전에는 교회가 문화를 선도한다고 했다. 교회에 가면 기타를 메고 세련된 청바지 입고 있는 교회 문화가 있고 그런 이미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세속을 선도하지 못 한다. 왜냐면 세속의 문화가 더욱 즐겁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교회가 그 문화를 쫓아가려고 문화 선도적 관점을 갖는 것은 굉장히 뒤처진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문화전쟁’을 거는 것 자체가 이미 지겠다는 생각이다. 문화는 세상의 것이다. 세상이 누리고 있고, 세상에서 자라고 있다. 잠시 잠깐 교회가 앞섰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추억 하면서 마치 교회가 문화를 점령하고 모든 문화를 기독교 문화화 시킨다는 오만을 자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제국주의적 발상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문명권 안에서 기독교는 소수자였는데, 로마는 무너지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했다. 문화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고, 복음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문화는 자연스럽게 복음화된다고 생각한다. ‘로드니 스타크’라는 일반 종교학자가 있다. 그는 ‘기독교가 약자,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을 포용했다. 약자를 쓸어모아 제국을 점령했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기독교가 이 정신을 되찾을까 두렵다”라고 했다. 왜냐면 이렇게 되면 기독교만 남게 되고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고 본다. 우리가 복음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꾸 대항하려고 한다. 싸우려고 한다. 세상의 니즈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세속주의적 방법으로 가고 있고, 그들의 질서와 그들의 리그대로 움직이는데 우리가 거기에 자꾸 껴서 견줄려고 하고, 기독교적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그 노력이 전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힙합가수 비와이 같은 크리스천 문화를 선도하려고 하는 흐름은 좋은 도전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으로 이길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면 기독교 안에서도 “너 문화에 물들었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나는 좋은 의도로 문화를 기독교화 시키려고 애써도, 그런 내부 총질 때문에 어차피 힘들다. 그들의 리그에 끼지 않고, 그들의 리그 밖에서 초연하게 기독교적 공동체성을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복음의 문화, 교회 전통 이런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면 여기서 나오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문화는 문화로서 즐기고, ‘일반은총’으로서 그것을 누리되, 일반 은총을 모조리 다 ‘특별은총’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고 본다. ‘일반은총’의 영역이니까 문화는 문화대로 봐야 하고 문화를 죄악시할 것도 아니다. 다만 반기독교적 문화라는 것이 분명이 있다. ‘클럽 문화’ 같은 것들은 확실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대중적 일반 문화까지도 누리지 않는 것은 좀 지나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청교도적 관점으로 문화를 분별하되,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패권주의적 사고’는 좀 내려놓고 이제는 기독교적 가치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좀 위험한 발언일 수 있다. 그런데 좀 답답하다. 문화랑 싸우겠다고 하는데, 물론 무의미하지 않고 필요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뻔히 보이는 싸움을 하는 것 같다.
Q. 사역하다가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으신 적이 있다고 했다. 양극화된 이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A. 양극화 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극단에 있는지 모른다. 메시지를 던져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적용한다. 이미 훌륭하신 목회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얘기를 하셨다. 어쩌면 저 자신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침묵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는 얘기해야 한다. 침묵이 악을 키울 때가 있다. 각자 신앙 양심상 올바른 대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시고 옳지 않다면 주님께서 방향을 돌리시지 않을까 한다.
Q.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A. 나는 책을 늘 좋아해서 한 권을 뽑으면 다른 책들이 서운해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신학자 중에 ‘캐빈 벤후저’라는 신학자가 있다. 시카고 트리니티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다. 그분이 쓴 책 중에 ‘교리의 드라마’라는 책이 있다. 내가 아주 즐겁게 독서한 책이다. “교리서는 딱딱하게 정형화된 책이 아니고 ‘구속의 드라마’”라는 관점으로 저술된 책이다. 누군가에게 ‘교조주의’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교리의 아름다움을 좀 전해야겠다. 기독교 신앙의 구속사적 교리가 얼마나 우리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지 확신 있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다. 나의 목회관이나 목회철학에 큰 도전을 줬고, 중심축이 되어 준 책이다.
Q. 앞으로 사역의 방향은?
A. 크게 3가지 정도 목표로 하고 있다. 첫째는 기독교 변증학에 대한 교과적 책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원고 작업이 좀 돼서 출판사에 드리고 있다. 출판이 꼭 됐으면 좋겠다. 추천사 써주신 분들도 저명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다. 좀 교과서적 지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먼저 방황을 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이 기독교 변증을 공부할 때 가이드라인이 되면 좋겠다.
둘째로는 목회이다. 구성교회가 지금 새로 등록하는 성도도 계시고, 기존에 있던 성도도 계신다. 이분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일평생 복음을 누리며 즐겁게 사시고, 저도 또한 목회 여정을 하는 가운데 교회가 더욱 부흥되고 은혜로 단단해지고 은혜에 흠뻑 젖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북한 선교에 대한 비전을 계속 가지고 있다. 탈북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본질적인 문제들, ‘교회가 치킨집보다 많다. 편의점보다 많다. 교역자 수는 적다. 또는 교역자 수가 너무 넘쳐 난다’ 등등 통일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참 많다. 그래서 탈북자 청소년들이 신앙에 열심을 가지고 가까운 미래에 통일된 한국에서 복음의 일을 꾸려나가는 것에 협력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저와 여명학교 학생들이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탈북자 학교인 ‘여명학교’에서 오랫동안 논술 지도를 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했다. 그 친구들과 제가 비전을 갖고 기도하며, 각자 현장에서 일단은 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때가 되면 구성교회 개척을 평양에도 하고, 청진에도 하고, 신의주에도 하고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