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실한’ 크리스천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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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열린 각종 시상식에서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수상소감이 연일 화제다. 대중의 인기를 생명처럼 여기는 연예인들이 마이크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짧은 한마디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셨다는 ‘신앙고백’의 압축이다.

지난 연말 ‘2022 KBS 연기대상’에서 장편 드라마 부문 여자우수상을 수상한 배우 이하나 씨는 수상소감을 전하다 자신이 종이에 적은 글을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우리의 지금 이 고난은 결국은 지나가는 것이며 이것을 잘 견뎌냈을 때 그 고통 모두를 능가하고도 남을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줄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고후 4:17, 롬 8:18)이었다.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연말 수상소감 퍼레이드 중 ‘올해 예능인상’을 수상한 방송인 김성주 씨의 소감도 큰 울림을 줬다. 그는 목회자였던 부친이 자신의 이름을 거룩할 성(聖) 기둥 주(柱)로 지었는데 이는 ‘십자가’를 의미한다며 “평생 고난의 길을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여러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 1969년 충북 청원군 덕촌교회를 시작으로 1986년에 청주동부교회에서 목회해온 그의 부친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지난 2016년 소천했다. 그가 방송에서 아버지가 목사라고 밝힌 건 지난 2013년 ‘SBS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는 “아버지는 시골 목회자로 많은 사람들을 섬기셨지만 정작 가정은 돌보지 못하셨다”며,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 일화를 공개했다.

연예인들이 수상 소감을 통해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드러내는 사례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18년 연말에 KBS, MBC 연예대상을 휩쓴 코메디언 이영자 씨는 두 방송에서 연속 대상을 받은 후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게 기둥이 돼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를 겉으로 드러내는 수상 소감을 듣기 거북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따라서 자제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연말이면 여러 방송사에서 이어지는 이런 수상 소감에 대해 타종교를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지적과 함께 아예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불교계는 지난 2013년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가 방송 3사에 수상자들이 종교 편향성 수상 소감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종평위는 방송사에 보낸 공문에서 “사회적 영향력 있는 방송에 나오는 공인이 자신의 종교 신념을 방송의 공공의 힘을 빌어 표출하는 것은 공인의 위치를 망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불교계가 내세운 명분이 다름 아닌 ‘종교간 화합’이다, 즉 기독교 연예인들의 수상 소감이 종교간 화합을 헤친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종평위가 연말 방송사 시상식을 모니터링해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방송 3사 전체 수상자 177명 가운데 불교인은 10명(5.6%), 기독교인은 72명(40.6%)이었다. 이 가운데 불교 관련 발언을 한 연예인은 2명(1%), 기독교인은 32명(18%)이다.

그러니까 연예인 수상자 중 불교신자(불자)보다 기독교인이 월등히 많은 것과, 또 불자는 자신의 종교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기독교인은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히는 빈도가 높은 것이 종교편향이고 듣기에도 불편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종평위의 보고서에는 “활동이 중단된 보리방송모니터회가 역할을 하도록 재정을 지원하고 연예인 불자회 활성화도 필요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한마디로 불자 연예인들로 하여금 방송에서 자신이 불자임을 드러내는 사례가 많아지게 하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한편에선 기독교인의 수상 소감이 종교간 화합을 헤친다며 방송사에 압력을 가하는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불렀다가 불교계가 반발하자 즉시 고개 숙여 사과한 공직자도 있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은 지난 2일 공수처 시무식에서 독일 본회퍼 목사의 시 ‘선한 능력으로’를 소개하며 이 시에 곡을 붙인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조계종 종평위가 김 처장의 종교 편향 문제를 지적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처장은 곧바로 “이유를 불문하고 공직자이자 수사기관장으로서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바로 불교계에 사과했다.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도 자신이 근무하는 공직기관의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부른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정권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만든 정치 편향적 기관이란 꼬리표가 붙어있는 공수처에서 처장이 한 행동이었으니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공수처장이 무슨 이유로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처신이 적절했다 할 수 없다. 그런데 찬송가를 부른 것보다 찬송가를 불러 죄송하다고 불교계에 머리 숙여 사과한 일이 더 부적절해 보인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찬송가를 불렀는지, 논란이 될 걸 알면서도 찬송가를 부른 건 아닌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언론은 시상식장에서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는 연예인이나 시무식에서 호기롭게 찬송가를 불렀다가 곧바로 사과한 공직자나 모두를 한데 묶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표현한다. 즉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는 뜻인데 공공기관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운다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라고 다 독실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