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금개혁, 미봉책 아닌 정면 돌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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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새 정부의 3대 과제로 제시한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2023년 새해 화두로 던졌다. 윤 대통령은 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개혁 드라이브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 3대 개혁은 대한민국과 젊은 세대의 앞날이 걸린 중차대한 과제다. “개혁은 인기 없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중 특히 국민연금 개혁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의 요율을 올리지 않고는 앞으로 30년 안에 기금이 완전히 고갈돼 1990년생부턴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니 이보다 급한 일이 없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연금 가입 기간을 연장하고, 수급 개시 시점을 늦추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과감한 개혁으로 다가올 파국에 대비해야 한다.

연금개혁은 계산적으론 복잡할 거 같으나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내가 받을 연금이 고갈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으니 그걸 고치는 게 개혁의 첫 걸음인거다.

그런데 개혁을 시작도 하기 전에 반발을 의식해 다른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내고 더 받자’는 건데 그런 방법이 있다면 구태여 힘들게 개혁을 할 필요 없다. 하지만 당장 소나기를 피하자고 정공법이 아닌 꼼수를 쓰면 결과는 더 나빠진다.

연금은 소득의 일정 부분을 노후를 위해 차곡차곡 쌓는 ‘곳간’의 개념이다. 개인연금은 본인과 은행이 책임지지만 국민연금이라는 ‘곳간’은 나라가 든든히 지켜줘야 한다. 이런 문제에 여야가 정파적으로 다툴 일도 없다. 그러니 전문가들에게 맡겨 개혁안을 만들도록 하고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절차적 논의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 가지 걸리는 건 내년 총선 등 정치 일정이다. 여야 모두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지지율과 표를 의식해 인기 없는 개혁에 굳이 총대를 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책임지지 못할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동안 연금개혁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윤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3대 개혁을 주문하자 민주당은 “민생경제부터 살리라”며 어깃장을 놨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경제지표들이 차갑게 얼어붙어 겨울 한파보다 더 차가운 경제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며 “민생경제 위기 극복 청사진부터 제시하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의 비판은 대통령이 제시한 ‘3대 개혁’이 실질적인 민생 대책이나 위기 극복 해법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구호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경제 한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오래 전에 개혁을 완성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누가 누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지난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연금은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에 완전히 고갈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보다 이른 2055년을 고갈 시점으로 봤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는 연금개혁을 오늘까지 수수방관했다. 눈앞의 지지율을 신경 쓰느라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야당은 어깃장이 아니라 뼈아픈 자성을 해야 한다.

현재로서 연금개혁의 방향은 연금을 받는 시점을 만 65세보다 더 미루고, 납부 기간을 늘리는 쪽으로 정해질 공산이 크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안 말고 더 좋은 대안이 나오면 좋겠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면 개혁은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과는 다른 경우지만 각 교단이 시행하고 있는 교역자연금의 처지도 아주 다르지 않다. 기금 규모가 가장 큰 예장 통합측이 운영하는 교역자연금의 경우 연금의 수입과 지출이 역전되는 수지 적자 시점은 2035년, 기금 고갈 시점은 2049년으로 분석됐다.

교역자연금 또한 초기에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으로 인해 오랜 기간 적자가 누적돼 온 게 문제로 지적됐다. 따라서 더 늦지 않으려면 과감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매번 교단과 재단 이사회, 가입자 간의 입장 차이가 커 ‘뜨거운 감자’가 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연금이나 교역자연금 모두 지금으론 안 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걸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은 이해당사자간에 신뢰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여기서 신뢰가 성립하려면 최종적으론 국가, 또는 총회가 끝까지 책임지는 데 달려있다.

문제를 알면서도 회피하고 시간을 끌다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젠 미봉책이 아닌 정면 돌파로 곧 닥치게 될 위기에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