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가 설교했던 영상을 유튜브 채널 ‘드리미’에서 최근 게시했다. 이 영상은 조 목사의 설교와 함께 나란히 수어 동시 통역가의 통역으로 구성됐다. 조정민 목사는 이 영상에서 ‘고난이 해석되는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조 목사는 “서양에서 여자들이 결혼할 때 3가지 반지를 낀다고 한다. 약혼 반지(Engagement Ring)과 결혼 반지(Wedding Ring)이 있다. 그런데 3번째 반지를 꼭 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써퍼링(Suffering)이라는 고난의 반지’를 같이 받아야 한다”라며 “그만큼 ‘결혼’이라고 하는 기쁨에 고통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함께 간다”라고 했다.
이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태어날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긴장되는가’ 나는 임신중 10달 내 입덧을 하는 여인을 봤다. 부인이 둘째 아이를 갖는다고 하니 남편이 그것을 못 견뎌서 안 갖겠다고 결정하는 것을 봤다”라며 “그런데 그만큼 여인이 힘든데도 또 아이를 갖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난산 끝에 오는 해산의 기쁨과 또 다른 생명체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할 때 오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라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과해야 그래야 제자들이 기쁨을 알게 된다. 인간이 진짜 기쁨을 알게 된다.’ 이 얘기다. 우리는 고통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데 고통이야 말로 귀한 것”이라고 했다.
조 목사는 입에 돌아갔을 때 자신을 고쳐준 한 선교사에 대해 얘기했다. 무슬림권에서 한의사로 침을 놓으며 선교를 하며 기적을 많이 일으킨다고 했다. 맹인의 눈에 침을 놓아서 눈을 뜨게 하고, 사지가 마비가 돼서 못 일어나는 아이를 침으로 일으켜 세우기도 해서 동네에서 난리가 났었다.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신 분”이라고 했다.
조 목사는 “그분의 특징은 침을 참 아프게 놓는다는 것”이라며 “침을 꽃아 놓고 조금있다 와서 침을 뱅뱅 돌린다. 얼굴에 20개 정도 침을 꽂아 놓는다. 귀 옆에 눈 바로 옆에, 인중에 코밑에 턱밑에, 20개를 돌아가며 돌리는데 무슨 고문도 아니고....”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그걸 참아내는 이유가 뭐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되돌아온 입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참는다”라며 “‘구안와사’라고 부르는 입이 돌아가는 증상은 눈이 돌아가지 않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으며 눈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다음 입이 돌아가서 침이 질질 흘리기 때문에 마음대로 먹지를 못한다. 먹으면 줄줄 센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라고 했다.
그는 “생명과 고통은 ‘동전의 앞뒤 양면’과 같다. 고통은 우리 삶의 일부다. 우리 존재의 일부다.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 한센병과 파도타기
조 목사는 인도의 의료선교사인 ‘폴 브랜트’에 대해 얘기하며, 폴 브랜트의 부모 또한 인도의 선교사로 한센병자들을 섬겼으나 폴 브랜트는 유년·청년기 시절 그런 자신의 성장 환경을 괴로워했다. 왜냐면 ‘언제 자신도 한센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폴 브랜트가 성장 후 어느 날 집에 돌아오며 한센병과 같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 때부터 그는 “통증이라는 감각을 돌려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한센병은 아니였고, 일시적인 마비현상이였다.
조 목사는 “한센병은 고통이 없어지는 병이다. 고통이 없으니 좋은 것 아닌가? 아니다. 고통이 없기 때문에 손가락이 떨어져도 모르고, 코가 떨어져 나가도 모르거 걷다가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라며 “폴 브랜트가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겠는가. 왜? 다시 고통을 깨닫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으면 끝없이 간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돌이킨다. 그만큼 고통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조 목사는 “고통이 인생에서 상황적, 환경적으로 확산된 것을 우리는 ‘고난’이라고 말하고, 조금더 큰 규모를 ‘환란’이라고 표현하지만, 뿌리는 힘들다는 것, 고통스럽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 고통이 의미가 해석이 되면 견딘다. 해석만 되면 고통을 향해서 뛰어드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어 “신앙이란 인생의 고통을 해석하는 능력”이라며 “고통은 은혜의 바다 위에 일어나는 물결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물결을 타는 사람을 ‘서퍼’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파도를 타는 사람이 있다. 큰 파도를 찾아다니고, 그 파도를 뚫고 윈드서핑을 한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좀처럼 그런 일을 하지 않지만, 파도의 고난을 이해하는 사람은 파도 타기를 하러 나가는 것”이라며 “잔잔한 파도는 타지도 않는다. 탈수도 없고, 큰 파도를 타야 적어도 10~13미터 정도의 파도는 타야 기쁨을 느낀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왜 예수님을 통해서 그런 고난의 해석을 갖는가? 그분이 고통의 클라이막스까지 갔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상을 교회에 걸어 놓는다. 고통과 고난의 상징이다. 그 고난이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상징’이자 ‘아이콘’”이라고 했다.
조 목사는 “나는 예수님을 믿고서 고통이 해석이 됐다. 예수 믿고 나서 나는 세상적으로 잘 된 것이 하나도 없다”라며 “iMBC의 CEO하다가 내려놓은 것이 잘한 일인가? CEO가 되면 적어도 비서도 있고 기사도 있고 차도 나온다. 비서하고 기사가 떨어지니까 업무 효율이 3분의 1일이고 5분의 1이다. 모든 것을 다 내가 해야 한다. 고통이 말도 못하다”고 했다.
# 복을 받는 것과 불만
조 목사는 “창세기 12장 1~2절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가 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복이다. 그런데 무슨 복을 찾는가? 하나님을 만나 사람은 자신이 복이다. 그는 복을 더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라며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18가지 기도문이 있었다. 다 복 달라고 하는 기도다”라고 했다.
이어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더 이상 복을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복이고 내가 기준이다. 더 이상 복 때문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에 기쁨이 차오르면 세상의 부조리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게 된다. 문제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며 “내가 불만스럽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어 “존 오트버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불만이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을 밀어낸 것’”이라며 “하나님을 밀어낸 자리에 불만이 생긴다”라고 했다.
#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조 목사는 “우리는 땅의 시간을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시간을 사신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사신다. 영원이라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동시라는 것을 뜻한다”라며 “우리는 사실 과거라는 것도 없고 미래라는 것도 없다. 지금이라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라는 것을 통해 과거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희망’이라는 것을 통해 미래의 시간을 가지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는 현재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시간 전체가 현재이다. 따라서 그 현재에는 과거가 녹아 있고 미래가 녹아 있기에 과거·현재·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인데 그것을 하늘의 시간이라고 한다”라며 “그것이 이 땅의 시간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카이로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시간이다”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사건은 2000년 전 사건이지만, 이것이 카이로스로 인식되면 지금 나를 위한 사건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여전히 유효한 사건”이라며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청년이 죽은 사건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크로노스적인 사람의 시간관념”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영원한 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분의 사랑 안에 잠기기만 한다면 그 모든 시간이 해석이 되고, 그래서 과거가 해석이 되고 그래서 미래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 가보지 않은 미래’를 이미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것”이라며 “‘믿음이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 속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데 그 과정이 ‘고통’이라고 느낀다”라며 “‘그냥 단번에 구원해 주시면 안되나? 데려가시기 전날까지 내 맘대로 살면 안되나? 십자가의 강도처럼...’ 그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고난의 시간 전체가 우리에게는 사랑이 몸에 훈제되는 시간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리고 그 고통의 의미해 해석되어져야 하고 고난의 의미가 깨달아져야 한다”라고 했다.
# 결론
조 목사는 “여러분, 지금 사랑을 필요로 하십니까? 그러면 더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여러분 자신을 밀어보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곳에서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우리 자신을 의지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 가야 그 분의 사랑이 느껴진다”라고 했다.
이어 “예수님을 믿고 과감히 도전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내가 53살에 신학교 도전해 봤다. 영어가 돼서 간 것이 아니다. 신학교는 내 힘으로 간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거기서 교회를 시작했다. 13명으로 시작해서 670명까지 성장해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한 것이 없던 걸 알았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라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이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이 더욱 해석이 되고, 그 고통은 더 큰 기쁨으로 연결된 것을 알았다”라고 했다.
조 목사는 “인생에 우리가 보기에는 불공정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 불공정도 고통도 인생의 일부이다.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손안에 통치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우리의 신앙은 자기 고집에서 벗어난다”라며 “자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신앙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라고 한다.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였지만 내용물은 은혜’라고 한다”라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급류를 건널 때, 힘들지만 큰 바위를 하나 안고 간다. 그러면 안 떠내려간다. 이것이 나를 지켜준다”라며 “멀리 가보면 우리 인생의 고통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떠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다.
이어 “힘들더라도 껴안고 가십시오. 그것을 버리면 세상에 떠내려간다”라며 “죽은 물고기는 다 떠내려간다. 생명력이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