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기념 성당, 문화제 등록 예고

김대건 기념 성당의 외부와 내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 성당이 문화재로 등재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등록 이유’에 대해 “‘안성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은 한국 최초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 및 묘역들로, 해당 유구들을 통해 한국 천주교의 발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라며 “기념성당의 원형이 상당히 잘 유지되어 있고, 성당 앞에 위치한 묘역들이 성당의 상징성‧장소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라고 했다.

이어 “등록 예고된 ‘안성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에 대해서도 30일간의 예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김대건(1822~1846)신부는 1846년 9월 16일(음력 7월 26일) 우리 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수선탁덕(首先鐸德, 첫 번째 성직자라는 칭호)으로 한강 새남터(지금의 노량진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다. 김대건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 출신으로, 그의 부친인 김제준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 성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한 학생이며, 라틴어와 프랑스어, 중국어, 서양음악, 그림 등을 구사하고 활동한 국제인이자 여행가였다.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모방(Pierre Philibert Maubant) 신부에 의해서였다.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인 모방 신부는 1836년 1월 12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들어와 경기도와 충청도 등지를 돌면서 신도들에게 영세를 주는 한편, 한국 최초의 신학생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명의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 신학교로 보냈다. 김대건은 이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선발되었는데, 그가 선발된 것은 모방 신부와 더불어 김대건의 부친인 김제준과 친한 정하상이 중간 역할을 하였다.

6월 4일 상해에서 김대건은 마침내 사제에 서품되었다. 서품을 받은 후 그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10월 12일에 충남 강경 부근의 황산포에 도착하였다. 이후 순교하기 전까지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오가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었고 페레올 주교의 요청으로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 일의 일환으로 1846년 5월 14일 황해도에서 중국 배에 편지와 조선지도를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6월 5일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었다. 40여 차례의 모진 고문을 받은 김대건은 9월 15일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날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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