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시집을 한 권 읽었다. 김명희 시인이 쓴 『꽃밭에 우산』이라는 시집이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이후 30년 만에 다시 쓴 시라고 한다.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중 깨우침을 주는 시 하나가 있어 소개한다.
<물들고 싶어>
쑥을 만졌더니/쑥물이 들었어요/꽃을 만졌더니/꽃물이 들었네요/나 주님을 만지면/빨강으로 물들까요/순백으로 물들까요/손톱 밑이 아니라/마음 깊이/빨강이든/순백이든/나 물들고 싶어요/표범의 얼룩무늬 잠기도록/주님의 색으로/깊이깊이(김명희, 『꽃밭에 우산』(서울: 한사람, 2022), 40-41)
시인은 연결되는 성구로 렘 13:23절을 소개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 연에 소개한 “표범의 얼룩무늬 잠기도록 주님의 색으로 깊이깊이”라는 내용의 출처가 되는 구절이다. 시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성선설’을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치 않는 사람과 만나고 인생이 삐걱거리기 시작할 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자신에게 무익했음을 깨닫는다. 새로운 지식이 필요했다. 결국 자기 안에서 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녀가 발견한 한 가지는 자기 안에 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표범이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이를 입증해준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하나님을 떠나 있는 존재 속엔 선도 없고 선을 추구하는 마음도 없다. 물론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 속에도 선을 추구하는 티끌만큼의 의지는 일반은총으로 살려두셨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온전한 선을 추구할 수도 행할 수도 없다.
죄의 뿌리가 속에 있기에 결국은 선이 아닌 악을 결실할 수밖에 없다. 배움으로도 훈련으로도 속세를 벗어남으로도 죄를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혼자 힘으로 절대선은 불가하다. 김명희 시인은 그걸 깨달은 것이다.
때문에 만지는 대상을 삼가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해 봄날, 쑥을 다듬다 손가락에 쑥물이 드는 것을 보면서 위의 시를 썼다 한다.
쑥을 만지면 쑥물이 들고 쑥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다. 진달래를 만지면 핑크색 물이 들고 진달래 냄새를 풍긴다. 죄 되고 세상적이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을 가까이 하면 세속물이 들고 세상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다. 거룩하고 경건하고 신앙적인 것과 접촉하면 은혜에 물들고 은혜의 냄새를 풍기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젖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으로 물들어야 한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소돔 가까운 동쪽을 선택해서 떠난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다. 소돔 근처로 옮긴 그는 마침내 죄악에 물든 소돔에 정착하게 된다. 그 결과 소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고통 당하다가 하나님이 소돔성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 덕에 간신히 구원받음을 본다.
오늘 우리 주변에 우리를 유혹하는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기적인 욕망의 눈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뜨거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
만일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부턴 만지는 일에 삼가 유의해야 한다. 세상 아무 것에나 함부로 접촉하여 물들지 말고, 오직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한 것들만 기까이 하여 깊이깊이 물드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