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외진 시골 마을의 우편배달부 제스퍼. 그는 사실 우정공사 총재의 아들입니다. 시쳇말로 ‘금수저’에 해당하는 게으른 아들을 훈련하기 위해 총재가 일부러 외진 곳으로 발령을 낸 건데요. 그곳에서 벗어나려면 1년의 기한 동안 6천 통의 편지를 배달해야 한다는 미션을 부여합니다. 포기하고 돌아오면 상속권을 줄 수 없다면서 말이죠.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포기할 수 없는 제스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 마을의 우편배달부 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이 6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은 옛적부터 둘로 갈라져 서로 죽일 듯이 원수처럼 지내 왔기 때문이죠. 화려했던 도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낙심한 제스퍼에게 마을을 벗어날 길이 열립니다. 클라우스라는 의문의 사내를 만난 것이죠.
솜씨 좋은 목수였던 클라우스는 자신이 만든 장난감을 아무 대가 없이 아이들에게 몰래 건네주곤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스퍼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클라우스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장난감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클라우스에게 쓰게 한 것이죠. 장난감을 원했던 아이들로 우체국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제스퍼가 목표량 6천 통을 달성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됩니다. 일의 동기는 다르지만, 제스퍼와 클라우스는 함께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한편, 장난기가 발동한 제스퍼는 아이들에게 ‘클라우스는 착한 일을 하는 아이에게만 장난감을 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순진한 아이들의 선행으로 인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전쟁터와 같던 마을은 공감과 우애로 가득한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합니다. 목적을 달성하면 마을을 떠날 요량이었던 제스퍼는 이 일로 인해 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클라우스도 삶의 기쁨을 되찾게 되죠.
산타클로스의 기원에 관한 창의적 해석
‘산타클로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굴뚝을 타고 나타나 어린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는 마음 좋은 아저씨’, ‘빨간 옷과 흰 수염’, ‘사슴이 끄는 썰매’,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그 산타클로스의 기원에 대해서 애니메이션 <클라우스>는 창의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제스퍼와 클라우스가 방해꾼들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지켜낸다는 활극이 산타클로스에 관한 익숙한 이야기와 만나 흥미롭게 변주됨으로써, 스페인산 애니메이션 <클라우스>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낳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장난감을 나눠주는 클라우스의 선행은 아이들은 물론 마을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비록 장난감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선행은 곧바로 어른들의 선행으로 이어져 오랜 시간 미움과 다툼에 사로잡혔던 마을 사람들 전체를 감화시키죠.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잊은 채 하루속히 돈을 벌어 마을을 떠날 생각뿐이었던 알바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그녀의 선행으로 아이들은 물론 철부지였던 제스퍼도 어른이 되어 갑니다.
우리 모두의 성장담
제스퍼는 아버지의 유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성실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은 ‘어른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클라우스의 선물을 배달하는 일을 하면서 이타적이고 사려 깊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해 가죠. 이 애니메이션이 온기를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자고 일어나면 빨간 양말 안에 선물이 담겨 있기를 기대하던 소년 소녀였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양말 안에 따뜻한 선행을 선물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는지 <클라우스>를 통해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이 작품을 보고 눈가가 촉촉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너무 메말랐거나, 아직도 산타클로스를 믿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히브리서 10:24 / 새번역)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