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18년 연속으로 채택됐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주도한 올해 유엔 결의안에 우리나라는 4년 만에 다시 공동제안국에 참여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표결 없이 전원 동의 방식으로 통과됐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9년부터 공동제안국에 불참했던 우리나라가 복귀하게 된 건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퍽 다행스럽다.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에 국제사회가 문제를 직시하고 연대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는 만큼 북한으로선 심적으로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알면서도 북한인권결의안에 줄곧 불참했다. 남북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라 하나 사실상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한국 정부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국내외 인권단체와 서구의 나라들로부터 “한반도 문제 당사자가 북한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문 정부의 확증 편향적 대북 인권 인식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윤 정부가 소위 자유, 민주, 인권, 법치 등 이른바 ‘가치 기반외교’를 내세우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존중 원칙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른바 글로벌 보편적 원칙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의 기조, 가치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윤 정부 출범 이후 군사적 도발의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는 북한이 예외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를 대하는 국제사회의 반응도 뜨겁다. 우선 유럽연합과 미국 등의 한반도 전문가들부터 환영 일색이다. 드디어 한국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반가움에 표현이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 특사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과거에 수행하던 정책으로 돌아가는 ‘반가운 복귀’”라고 했다. 로버타 코헨 전 미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 역시 “한국의 동참은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보호, 복지에 필요한 개혁을 지지한다는 긍정적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이 결정은 유엔 총회에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유엔 총회가 결의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의 위치를 회복한 것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이번 인권결의안에 담겼다. 다름 아닌 서해 공무원 피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이 처음으로 적시됐다는 점이다.
본래 북한인권결의안엔 외국인에 대한 납치, 고문, 자의적 구금, 즉결처형과 관련한 조항이 들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유족들과 관계 기관들에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는 2020년 9월 바다에 표류중 북한군에 피살돼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족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탈북민 송환 금지 원칙도 결의안에 담겼다. “북한으로 송환되는 북한 주민들이 강제 실종, 자의적 처형, 고문, 부당한 대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대목이다. 지난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탈북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이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에 구체적으로 포함된 건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국제사회가 주시할 뿐 아니라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외교도 ‘비정상화’에서 ‘정상화’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야 할 국내 정치 상황은 여전히 꽉 막혀 있다. 7년 전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으나 그 법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여지껏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은 여야가 각각 5명, 통일부 장관 2명이 추천해 총 12명의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지금껏 아무 이유 없이 재단 이사 추천을 미뤄오고 있는 게 재단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인권은 세계 만국의 보편적 가치다. 북한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지난 14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북한 인권 관련 국제 세미나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분단 당시 38선 이북에 살고 있었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있는 북녘 동포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여와 야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합의로 만든 법을 고의로 사문화하는 건 어떤 구실로도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약자의 인권에 적극적인 민주당이 북한 인권만은 전혀 다른 얼굴인 것도 설득력이 없다. 국회가 ‘북한인권법’의 실효적 가치를 사장(死藏)시키는 이유가 진영논리든 확증 편향이든 그 무엇이든 ‘단지 그 이유만으로’ 북한 주민이 당하는 고통까지 외면할 권리는 누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