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교회(담임 박지훈 목사) ‘세이레 기도회’가 11월 21(월)부터 12월 11일(일)까지 21일간 매일 저녁 8시에 진행 중인 가운데 11일 차인 지난 1일 김선교 선교사(다윗의 열쇠 대표)가 ’믿음’(롬 1:17)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선교 선교사는 “우리 안에 믿는다는 게 어렵고 치열한 정서가 있다. 믿음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 가운데 사용하는 믿음의 원리를 보면 믿음은 원래 쉬운 것이다. 원래 믿음은 믿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믿어주는 게 아니라 믿으려고 하는 대상을 알아가면 알수록 믿어지는 것이다. 함께 살아본 경험을 통해서 그 대상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관계 안에서 믿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의지적으로 믿어야 할 필요가 없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믿으려고 하는 대상인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 혼자 나를 갈고 닦는 신앙생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겪어서 알거나 깊이 알아가는 것만큼 믿어지는 것인데 나를 갈고 닦는 데만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나는 잘 바뀌지 않으니까 신앙이 낙심하고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믿음은 나의 어떠함과 상관이 없다. 믿으려고 하는 대상이 믿을만해서 믿는 것이지 내가 잘나서 믿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상을 깊이 알아가면 갈수록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성품, 인격, 상태 등으로 내 믿음을 점검하다 보니까 믿음이 자라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약해지는 것 같다. 믿으려고 하는 대상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이 오히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믿음이 어렵고 힘들다는 정서가 찾아들어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청년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에의 하나가 믿음으로 했는데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는 믿음으로 했는데 뭐가 안되냐고 다시 질문한다. 질문을 쉽게 바꾸면 믿음으로 했을 때 뭐가 어떻게 되길 바랐냐는 것이다. 기대한 게 있으니까 실망한 것이다. 믿음으로 했을 때 달라질 나, 믿음으로 했더니 바뀔 상황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단순하게 이야기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었다가 끝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안 나타나니까 믿음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 씨앗이 생명이 있고 땅이 좋은 땅이면 심기어지면 열매는 맺혀지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도 들어가겠지만 열매 맺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예수님도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하셨다. 내가 갈고 닦아서 열매 맺으려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가 믿으려고 하는 대상을 더 깊이 알아감으로 인해서 그분 안에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신앙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혼자 노력해서 열매 맺어보려는 애씀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렵고 팍팍하게 느껴졌진 것이다. 저 역시 그랬다. 그런데 주님이 이 믿음의 원리를 가르쳐주시는 동안에 제 안에 세워져 있던 잘못된 믿음의 기준에 저를 맞추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셨다. 우리 안에 암묵적으로 깔린 믿음의 기준이 있다. 과연 그 기준이 성경적인지 봐야 한다. 우리가 보통 예배 잘 드리는 사람, 기도 오랫동안 하는 사람, 성경 많이 읽는 사람, 전도 많이 하는 사람, 헌신하는 사람, 헌금 열심히 하는 사람, 찬양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으로 성경에서 찾으면 바리새인이 등장한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그들의 노력은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자체를 믿음으로 보지는 않으셨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사람들이 있다. 소경 바디매오,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나병 환자. 가나안 여인, 백부장.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기준으로 볼 때 믿음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수님께선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미 자신의 힘으로 해볼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해 보고 안 된다는 결론이 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이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결론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 엎어진 태도를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들은 그 문제를 해결해줄 대상을 제대로 믿고 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믿음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는 모두 존재적으로 죄인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올바른 기준을 세우고 선행도 베풀고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노력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조금 깨끗한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 공의의 기준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아니다. 사람들은 살인은 죄로 보지만 그 살인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인 분노는 죄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인이나 그 원동력인 분노나 똑같은 살인으로 보신다. 사람들은 간음은 죄로 보지만 간음을 가능하게 하는 음욕은 죄로 안 본다. 그런데 하나님은 간음이나 음욕이나 동일한 간음으로 보신다. 이런 기준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를 드실 때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어 “이게 문제다. 내 노력과 최선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엎어진 태도를 보시고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어진 사람의 모습은 경건한 모습이 아니다. 죄인인 채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건 내가 죄인이라는 걸 인정한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은혜를 구하러 엎어지는 태도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원리였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예수님께선 공생애 기간 제자 훈련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바꿔놓으셨는지를 보면 예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 수 있다”며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믿음의 원리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자기도 걷게 해 달라고 한다. 예수님이 오라고 해서 첫걸음을 뗐는데 물 위에 뜨게 됐다. 여기에 중용한 믿음의 원리가 담겨 있다. 베드로는 물 위에 뜰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뜬 것이다. 그럼 그다음 걸음도 예수님의 능력으로만 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만 보고 가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내 힘으로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자기 자신에게 주목한다. 그래서 파도가 이니까 파도와 자기를 비교하다가 물에 빠져버린다”고 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한 베드로가 그 고백을 한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예수님 앞에서 저주하며 맹세하고 부인한다. 이 모습이 3년 반 동안 예수님이 직접 제자를 훈련한 결과”라고 했다.
이어 “베드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간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배신했던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그리고 베드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주시려는 것처럼 베드로를 부르실 때의 누가복음 5장의 장면을 똑같이 연출하신다. 3년 반 만에 베드로가 바뀐 것이 딱 하나 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달라고 했다. 3년 반 동안 베드로의 성품, 인격, 실력은 발전한 게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망가진 것 같은 자신의 실상을 마주했는데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예수님께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신다. 저는 이것만큼 잔인한 질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자니 지금 내 모습이 형편없고, 내 모습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니 주님을 사랑하는 이 딜레마 앞에 베드로는 근심하며 고민하다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신다고 답한다. 그렇게 세 번의 고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준비됐다고 하신다. 한계를 경험한 베드로가 무엇이 준비된 것인가? 성경에는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준비가 다 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말의 의미는 네가 가려는 그 길은 너의 의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널 붙드는 은혜로만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인 은혜를 이론으로 이해한 게 아니라 자기가 경험해본 것이다. 그 은혜를 알게 됐으면 준비가 다 됐으니 네가 가서 받은 그 은혜를 전해주라고 이야기하신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증인에 대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믿음의 증인이라고 하면 경건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 그런데 재판석에 증인을 세울 때 증인의 학벌, 실력, 능력, 성품을 보고 세우지 않는다. 증인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세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건 믿음의 증인이었다. 바로 이 은혜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실력, 성품, 인격을 보고 믿음의 증인을 찾으시는 게 아니라 베드로처럼 은혜의 의미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을 믿음의 증인으로 부르신 거라면 이 길은 우리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 은혜를 경험하여 당당하게 걷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