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허가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지난 2011년 성별 정정을 불허한 전원합의체(전합) 판례를 11년 만에 뒤집은 데다 일반 사회 통념과도 배치는 점이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4일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는 성전환자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상 ‘남’으로 기재된 성별을 ‘여’로 정정해 달라는 성별 정정 허가 신청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이 미성년인 자녀의 복리를 해한다”는 취지로 원고의 신청을 기각한 바 있어 1, 2심과 대법원의 현격한 시각 차이를 보여줬다.
이 사건의 쟁점은 ‘미성년인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혼인 중에 있지 않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1, 2심은 지난 2011년 대법원 전합 판례를 따라 원고의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대법원 전합이 성전환자가 기혼이거나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성별 정정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한 판결에 그대로 따른 것이다. 1, 2심의 판단은 성전환자인 본인의 권리에 앞서 미성년 자녀가 받게 될 충격과 혼란을 감안한 측면이 뚜렷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전합의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대법관 11명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대법원이 “성전환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성으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한 것엔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성별 정정 자체가 가족제도 내의 성전환자의 부 또는 모로서의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한 대목에서 고개가 갸웃해진다.
미성년 자녀의 입장에서 부(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모(어머니)로 바뀌었는데 “부 또는 모로서의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 없다”라는 게 무슨 말인가. 관점의 차이라 하더라도 선의로 해석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린 자녀가 받을 충격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번 사건 2심의 판단을 보면 대법의 판단에 금방 수긍이 안 가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2심 재판부는 성별 정정을 허용할 경우 가족관계 증명서의 ’부(父)’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여’로 표시되면서 동성혼의 증거가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미성년 자녀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법 판결에 반대의견을 낸 이동원 대법관도 1, 2심의 판단과 같았다. 이 대법관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 및 미성년자인 자녀의 복리에 적합하고, 사회 일반의 통념에도 들어맞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이처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개운치 않은 건 11년 전 판례를 스스로 뒤집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법관들의 시각이 우리 사회 통념과 배치되는 게 더 큰 문제다. 성전환자의 권리를 앞세워 아무 잘못 없는 미성년 자녀가 받을 혼란과 타격을 간과한 점은 사회 통념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법원의 판결은 3심제인 우리나라에서 최종심에 해당한다. 1, 2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상급심에 항고할 수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그것으로 종결을 뜻한다. 그런 만큼 이번 판결의 파장이 이와 유사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구나 이번 판례가 향후 성전환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대법원이 이번 사안에서 보여주듯 사회 통념과 동떨어진 판결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대법관의 면모를 보면 그게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13명의 대법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재형 대법관의 경우 지난 9월 퇴임하면서 그 후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지난 7월에 오석준 제주지법원장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지 119일 만인 지난 24일에서야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대법관 임명동의안 지연으로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이런 문제는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는 한 반복해서 벌어질 수 있다. 야당의 입장에선 당연한 권한이라 하겠지만 임기를 마친 대법관의 후임을 추천할 때마다 일종의 ‘발목잡기’가 거듭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의 재판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의문이 드는 게 한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고 권위의 대법관들의 판단을 부정할 순 없다. 다만 이번 판결에 왜 국민의 시각과 사회 통념에서 동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지, 또 그 원인이 전 정부 때 임명된 진보 일색의 대법관 구성에 있는 게 아니냐는 쓴소리에 대해서도 대법관 스스로가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있는 판결로 명예를 회복해야 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