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미국에 이민 나와 살지만 우리의 삶의 반경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집과 차는 더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습니다. 학위를 받기도 하고 지식은 더 늘어났지만 가슴은 더 식어졌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더 많이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습니다. 돈도 벌고 생활은 더 편리해졌지만 여유시간은 더 짧아졌습니다. 인생을 사는 시간은 더 늘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상실감은 더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해야 우리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가치와 행복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왜 좋은 곳이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왜 은혜의 자리입니까? 1년 동안이나 수많은 짐승들과 창문이 없어 밖도 보지 못하는 곳에 갇혀서, 닻도 없고, 방향키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다녔지만, 하나님이 친히 배를 인도하시고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곳이 오히려 가장 가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왜 축복의 땅입니까? 이민자 아브라함에게는 친척도 없고, 자기 땅 한 평도 없는 땅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이었기 때문에 축복의 땅이 된 것입니다.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손실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크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명예나 부귀 권세를 조금 더 얻으려다가 하나님을 잃으면 소탐대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울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과 싸우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기고, 방귀 뀐 사람이 안 뀐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제 멋대로 예배를 드린 가인이 의로운 예배를 드린 아벨을 핍박하지 않습니까?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이 영적인 아들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육의 사람 에서가 영의 사람 야곱을 핍박합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처음에는 이겼지만 결국 쫓겨나고 하나님의 사람 이삭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이기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을 붙잡은 야곱이 믿음의 기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쫒아 다녔지만 결국 사울은 비참하게 죽고, 핍박을 받던 다윗은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빌라도는 천하의 죄인으로 이름이 남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 승리하여 천하 만물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결국 역전승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못 만나면 아무리 부자며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인생이 되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생명의 길을 발견하는 인생이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하며, 무엇에 붙잡혀 있습니까? 물질입니까? 힘 있는 사람입니까? 세상의 쾌락입니까? 아니면 내 고집과 주장입니까? 소탐대실의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므로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