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주저한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티기독교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반감과 기독교인들의 위축된 전도의 결과는 기독교 인구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인구의 감소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주일학교의 감소와 신학대학교의 미달 사태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감소의 원인을 분석하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다음세대들을 증가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미래에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명과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원인분석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감소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원인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개교회의 구성원, 문화,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탁월한 대책도 모든 한국교회에 적합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교회는여러 대책을 참고하여 자신의 교회 상황에 맞는 맞춤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도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필자의 시각에서 원인분석과 대책을 제시한다.
1. 한국교회 감소의 대표적 원인들
1) 인구수 감소
인구수의 감소가 한국교회 성도수의 감소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있는데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교회를 떠난 가나안성도들이 증가하고 이단들과 이슬람교도 증가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따라서 한국의 인구수 감소를 한국교회 성도수 감소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것은 빈약한 논리다.
2) 안티 기독교 증가
안티 기독교들은 개독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확산시키고, 일부교회의 부끄러운 면들을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시키고 또 덧붙여서 가공까지 해서 비난하므로 한국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것도 원인이긴 하지만 이단, 사이비들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확산시켜서 전 국민에게 비난을 받은 이단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원형인 초대교회는 현대교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난과 핍박을 받아서 카타콤과 같은 지하공동묘지에서 생활하는 고단을 자처했지만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기독교국가로 변신시켰다. 이런 면을 고려하면 안티 기독교 세력의 증가로 인해 한국교회가 감소한다는 것 역시 이유가 되지 않는다.
3) 성령충만의 상실
초대교회가 부흥한 것은 성령충만의 결과이고 현대교회가 감소하는 것은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필자가 신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 후반부터 듣던 지적이다. 그리고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도 계속 들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지금도 성령충만을 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교회는 감소하는가? 성령충만하다는 교회, 찬양집회, 부흥회를 통해서 부흥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성령충만을 모든 문제의 해답으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모든 책임을 성령님께 떠넘기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책임은 성령님이 아닌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
2. 한국교회를 위한 성경적 제안
1) 사람 동원방법을 개발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한국교회는 1980년대부터 유럽교회의 쇠퇴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한국교회의 쇠퇴를 막고 성장하기 위해 부흥회, 찬양집회, 성경공부, 제자훈련, 성전건축, 전도 초청잔치, 셀목회 등등 많은 방법을 도입했다. 교회성장연구소들이 제시한 방법대로 했지만 성도 수는 감소했다. 그 이유는 교회당에 모이는 사람 숫자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때는 현대와 같은 교회당이 없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고 목회자의 숫자도 적었다. 자연히 교회당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려는 목적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목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초대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고, 복음을 명확하고 담대하게 전하기 위한 능력을 간구했다(행4:29-30).
2) 전도상으로 경쟁시키지 말고 순수하게 전도하게 하라
한국교회는 성도들에게 전도 경쟁을 시켰다. 대형교회에서는 1등한 성도에게는 승용차를 주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전도상은 성도들 간의 경쟁심을 불러일으켜서 전도대상자에게 하루 일당을 지급하면서까지 교회에 초청하는 성도들까지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몰려왔던 사람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부작용, 그러면 전도상 받은 성도는 부끄러움과 허탈감에 빠지는 부작용, 사람을 데리고 오지 못한 성도들은 실패감에 빠지는 부작용을 낳아서 전도를 기피하게 만든다. 초대교회는 사람을 데려오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스데반은 순교하면서까지 전도했으나 단 한 명도 등록시키지 못했다(행7:60). 현대교회 기준으로는 1등 전도상을 받을 수 없겠지만,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전도상 받을 기대를 하지 않고 순수하게 열심히 전도했다.
3)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라
로마시대의 안티기독교 세력들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자들(식인종)이라고 비난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처음에는 로마인들이 그런 비난에 속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로마인들은 그런 비난을 믿지 않았다. 그 대신에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착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경했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행11:24). 그리스도인들은 가족이 아닌 타인까지 구제했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도 집안에서 내보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감염되어 죽더라도 버려진 환자들을 돌봐주었다. 버려진 자가 핍박자 로마인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겼다. 그리스도인들의 착한 일을 목격한 로마인들은 감동을 받고 존경하고 그들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 역시 성령충만을 전하기 이전에 구제, 의료봉사, 무상교육 등의 착한 일로 조선사회에서 인정받았다. 그것이 한국교회성장의 기틀이 되었다. 현대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존경받고 있는가?
4) 착한 일로 칭찬받는 자를 직분자로 세워라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의 귀족들이 많아지자 로마 황제 콘스탄틴도 기독교를 무시할 수 없었고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로마의 귀족들까지 감동시킨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그 중요한 이유는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을 직분자로 세웠기 때문이다. 직분자는 다른 성도들에게 모델이 된다. 초대교회는 직분 기준은 단순했지만 엄격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비록 일부를 숨기긴 했지만 많은 금액을 헌금했다. 하지만 거짓말한 죄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초대교회는 많은 헌금을 해도 정직하지 않거나,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죄를 범하면 직분을 주지 않았다.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성도를 징계할까? 안타깝게도 헌금 많이 하는 자, 정치인, 유명인들, 목회자와 친한 자에게는 직분을 쉽게 주는 교회들이 있다. 전과나 비리가 있어도 교회법도 무시하고 권사, 안수집사, 장로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폐해는 목회자들의 모임인 교단이나 연합기관의 임원을 뽑을 때도 다르지 않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장로직분 받은 분이 성경에서 금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불행한 역사도 안고 있다. 비윤리적 행태는 교회성도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비난을 받게 만들고 교회의 쇠태를 초래한다.
5) 성령님을 이용하지 말고 성령님께 순종하라
성령충만하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맞지만 성령충만하면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숫자 증가)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할 정도로 성령충만 했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한 숫자는 3명이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할 정도로 성령충만했고 설교도 잘했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한 성도는 1명도 없다. 반면에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정도로 성령충만하지 않았지만 니느웨 성 백성들은 전부 회개했다. 교회가 성도 숫자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면 실패한다.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은 사람이지만 복음의 열매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즉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순종하여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으면 어떤 결과이든 만족해야 한다. 성도 숫자를 증가시키려고 성령충만을 받거나, 은사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감히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교만이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다는 부흥회, 찬양집회, 기도회가 있어도 한국교회는 비난 받고, 성도 수는 감소하고,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성령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안디옥교회처럼 성령님께 순종하는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행13:1-3). 그럴 때 한국교회는 존경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진정한 부흥의 은혜를 주실 것이라 믿는다.
#김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