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성혁명은 서구에서 1960년대 전통적인 일부일처제적 결혼 밖에서의 섹스를 용인하는 문화로 변화한 것이다. 그 이전부터 서서히 성해방의 조짐을 보이다가, 1950년대의 소위 비트세대(beat generation)의 문화, 헨리 밀러나 노먼 메일러 등 유명 작가들의 성해방을 구가하는 소설들, 플레이보이지 같은 잡지 등을 통해, 프리섹스가 마치 멋지고 영웅적인 것으로 포장되기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현대 성학자들이 오르가즘 숭배사상을 부추겼고, 피임약과 페니실린이 프리섹스를 조장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프리섹스 풍조는, 1960년대 청년들의 다양한 반문화운동(counter-culture movement)과 더불어 나타났다. 반문화운동이란 청년들이 기성의 문화(establishment)에 저항하는 행동들로서, 일종 세대간 갈등으로 나타났다. 68학생운동 당시 대학가에는 반권위, 자유발언, 월남전 반대, 반핵, 신좌파, 녹색운동, 등이 나타났다. 기성체제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으로서는 이미 1950년대 이래 흑인인권운동이 격렬해지고 있었고, 섹스와 관련하여 여성“인권”운동(페미니즘)도 급진적이 되어갔고, 새로이 게이인권 운동도 등장하였다. 당시 문화적으로는 반전통, 히피-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대안적 라이프스타일(alternative lifestyle), 인간 잠재성, 마약사용, 싸이키델리즘(psychedelism), 롴앤롤음악, 컬트이교로서 동양철학과 사탄숭배사상이 결합된 위카(Wicca) 등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 합류한 프리섹스의 성혁명이 나타났다.
당시 소수의 진보적 엘리트들이, 작가, 사상가, 예술가, 대중가수, 영화와 TV 제작자들 등등이 성혁명 내지 반문화운동을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검열이 풀린) 상황에서, 열심히 선동하였다. 혁명적인 프리섹스 문화가 영화와 대중매체와 선정적인 “광고“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었다. 월남전의 참화와 더불어 성혁명적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었다. 이에 자극된 젊은이들은 풍요하고 지루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이유 없는 반항“의 정신이 넘쳐났다. 그들은 경계를 넘는 자유를 요구하며, 전통과 권위에 저항하고 이를 파괴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반기독교적 네오막시스트(신좌파)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
그들은 이성애든 동성애든 섹스는 사회적 구성(socially constructed)이어서 재구성(reconstruct)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구성주의란 결국 인간 마음대로 합의하고 정하면 그것이 진리가 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생물학(자연)을 무시하는 것이며, 크리스천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 일부일처제의 이성애적 결혼은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을 억압하여, 왜곡시킴으로 “노이로제”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에, 결혼 바깥에서의 섹스를 용인해 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이나 질투를 덜 느끼게 하면서, 더 많은 성적 자유와 쾌락을 누리게 해 준다고 선전하였다. 그들은 성혁명으로 미완으로 끝난(실패한) 막시스트 혁명을 완수하여, 지상에 유토피아(파라다이스)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좁은 의미의 성혁명은, 이런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선동된 당시 일부 젊은이들이 집(가족)을 떠나 무리를 이루고, 들판에서 술과 마약과 록음악에 취하여 춤을 추고 섹스에 몰두하였던 사건들을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1967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Haight-Ashbury 지역에 10만명 이상이 모인 젊은이들의 소위 “사랑의 여름”(the summer of love) 축제가 있고, 그 다음해 1968년 동부에서는 더 큰 규모의 40여만 명이 모인 우드스턱(Woodstock Music and Art Fair, 약칭 Woodstock)이 있다. 여기서 폭발적으로 프리섹스 풍조가 확산되었다. 축제동안 젊은이들이 수일간 노숙하면서 또는 들판에 천막을 치고 지내면서 록 음악, 술, 마리화나, LSD, 히피문화, 옷벗기(nudity)와 춤추기, 프리섹스를 즐겼다. 이 두 축제를 전후하여 지역마다 수많은 록페스티벌이 벌어졌고, 소문을 들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뭔가에 대한 기대를 안고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거기서는 의례히 록음악과 술과 마약과 춤과 프리섹스가 판을 쳤다. 성혁명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혁명은 일상적 삶에서 “사랑의 힘”(power of love)과 “섹스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sex)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는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로지 성적 쾌락의 힘과 느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동체와 이타주의롤 표방하였지만, 결국은 참여자들 간에 프리섹스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미국 주류사회는 이에 대해 놀라고 개탄하고 비판하였다. 미디어는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였다. 서구 기독교는 이에 대해 상황판단은 하였는지는 몰라도, 결국 막지 못하였고, 일부는 말려들기도 하였다.
성혁명의 광풍은 1980년대 에이즈 등장으로 일시 주춤해졌다. 그러나 성혁명적 행동들은 21세기 현재도 술집 거리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 눈에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 당시 성혁명은 ”실험적 하위문화“가 주류로 올라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50여년 지난 일이라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든 베이비부머들은 그 때 분위기를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겪은 후유증은 파괴적이었다. 궁극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주색잡기(酒色雜技)는 패가망신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극단적 형태의 성혁명으로 향해가면서 ”다양성“의 길, 즉 무질서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열역학 제2법칙처럼 인류사회는 붕괴되고 헤체되고 죽음의 상태로 가고 말 것 같다. 인류는 과연 이 무질서로 가는 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인가? 우리 크리스천의 소망은, 인간 이성이나 재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다. 예수님이 우리 기쁨의 근원이다.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