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내와 함께 단풍이 아름다운 북한산 자락 서울 둘레길의 마지막 코스인 형제봉과 정릉을 지나 우이동에 이르니 삼각산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고 화계사를 지나 도봉산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필자는 젊었을 때 대한민국의 수많은 성도가 가난과 질병, 가정과 직장의 문제를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삼각산에 올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곳이 바로 그 옛날 믿음의 선배들이 철야기도를 하면서 나무뿌리를 뽑는 절박한 심정과 일사각오 로 기도했던 곳이로구나! 그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 발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5030클럽에 가입한 대단한 나라가 된 것이다. 5030클럽이란 인구 5천만 명 이상과 국민소득 3만 불이 넘는 선진국의 나라를 지칭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 6개 나라인데 한국이 7번째로 가입한 나라가 됐다. 한반도 5천 년 역사 이래 가장 잘 사는 선진국이 된 것이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은 한반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마니산 정상에 단군조선을 세운 기록이 있다.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인 강화도 길상면에 위치한 해발 472.1m의 산으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하늘에 제를 드리기에 적절한 높이의 제단이 있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중국과 가까운 경기만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기오악의 하나인 양주 감악산과 개성 송악산, 서울 북한산 등이 한눈에 보이며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고려 왕조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한양이 눈앞에 보이며 고려시대에는 몽골제국의 침략을 끝까지 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까이에 인천항과 김포국제공항과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되는 성지이다. 마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감리교단에서 운영하는 강화기도원이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전국의 교인들과 선교사들이 모진 핍박을 피해 이곳에 모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기도원을 건축하고 마니산 정상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국지사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니산은 한반도의 5천 년 역사의 성지(聖地)이며 한민족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성지(聖地)의 근원이다. 강화기도원은 지금도 매월 1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철야기도를 하며 온 교회가 연합하여 함께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폭격함으로써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일본 천황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도움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하였고,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공산사회주의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건국하였다. 이로써 5천 년 역사를 가진 한민족이 두 동강이 난 것이다. 그나마 한반도의 남쪽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과 권능의 산물로 천운중의 천운이며, 기적중의 기적이고, 5천 년 역사의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였다. 해방 당시 우리민족은 대부분이 공산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지지하는 백성이었다. 조상대대로부터 지배계층인 사대부와 양반의 종과 노예로 살아오면서 모진 학대와 고난과 가난을 겪어왔고, 일제는 강제 징용과 징병과 정신대로 백성들을 짓밟자 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생존과 독립운동을 위해 옛 땅인 만주(동북3성) 벌판과 연해주로 유리걸식하며 떠돌아다녔다.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막스와 레닌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누구나 배를 굶지 않고 평등한 세상이 온다고 선전·선동을 해대니 나라 안팎의 대부분의 백성은 이를 동경하였고 또 동경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승국이며 공산사회주의 국가의 원조인 소련의 스탈린은 동유럽 국가들과 중국 몽골 등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나라에 공산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미국의 요청으로 뒤늦게 참전한 소련은 북한지역으로 진주했기 때문에 한반도는 100% 공산화가 될 숙명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미국이 예측한 것과는 너무 다르게 일본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소련군의 한반도 남쪽까지로 진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한반도의 완전한 공산화를 막아주신 것이다. 이는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다. 하나님의 기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스라엘의 모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다. 이승만은 1875년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황해도 평산에서 아버지 이경선과 어머니 김해김씨 사이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위의 두 아들은 일찍이 사망하여 승만은 집안에서 장손으로 성장하였다. 1877년 승만이 세 살 때 부모는 아들의 과거시험을 위해 고향 평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여 승만은 남산자락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승만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사서삼경을 외우고 역사와 천문지리를 다 꿰뚫었으나 과거시험은 연달아 떨어졌다. 이후 과거제의 폐지와 친구의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됐으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여 미국선교사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이는 이승만이 기독교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의 영향으로 이승만은 독립협회에 참여하였고 매일신문의 주필과 제국신문을 창간해 편집과 논설을 담당하였다. 이승만은 1899년 고종황제 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때 성경을 공부하고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한영사전을 편찬하였으며 '청일전기'와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승만이 구금된 직후 미국공사 알렌은 석방을 주선하였으나 고종의 반대로 거부당하자 승만은 탈옥을 시도하다가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1904년 8월 고종의 특별사면령을 받고 석방되어 민영환과 한규설의 도움으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이승만은 1905년 8월 태프트 국무장관의 주선으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났으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후 이승만은 1907년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학사, 하버드대학교의 석사, 1910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미국의 영향하의 중립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승만이 조기에 학위를 받게 된 것은 동양과 서양 학문의 정수와 깊이와 도(道)를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며 교수들보다도 더 학문의 맥(脈)과 맥을 통달했기 때문에 조기 논문이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독립운동과 동포들의 계몽운동과 선교를 위해 하와이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특히 미국에 있으면서 공산주의의 허구성과 스탈린체제의 소련공산당의 잔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인물을 요약하면 기독교 정신과 동양철학과 서양문물과 학식에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며 5년 7개월의 감옥생활과 오랜 해외망명으로 단련된 인품과 누구보다도 공산주의 이론의 허구성과 잔혹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 후 국민의 대다수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에 현혹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혜안과 통찰력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제헌헌법을 기독교 정신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제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5천 년 역사의 한반도 남쪽에 이승만이란 걸출한 인물을 예비하셔서 전 세계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즉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이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유일하게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한반도 남쪽에 예비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지도자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일이다. 당시 통계는 남한 국민의 약 70~80%가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민족과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한반도에 건국한 일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기적중의 기적이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위대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전쟁 때문이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과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와 유사한 면이 있다. 모세와 아론이 기도하면 이스라엘의 군대가 승리를 했고 기도하지 않으면 패배한 사건과 같은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소련 스탈린의 사주와 중국 공산당 모택동의 지원 하에 북한의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이승만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이다. 김일성의 무력기습남침에 대한민국은 병력과 화력과 장비의 엄청난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의 신속한 참전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중의 기적이었다. 전쟁 중에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는 곧 대한민국의 패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께 장마철임에도 융단폭격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청명한 날씨를 주시도록 기도를 부탁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전세를 역전시켰다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을 이룰 수 있었던 배후에는 이 조약을 근거로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3천여 회의 북괴의 크고 작은 도발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이 나라를 지키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외에도 토지개혁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시행했으며 전쟁 중에도 학교를 운영하였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외국유학을 보냈으며 과학기술의 바탕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일은 기적중의 기적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었다. <계속>
신동만 장로(국군중앙교회,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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