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거듭남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우고 알게 되었으며 여러분 스스로 거듭남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거듭난 자는 이 세상에서 어떤 축복을 받고 사는 것인지 네 가지로 정리해서 살펴봅니다.
1) 거듭난 자는 세상을 이기도록 도우십니다.
토저 목사는 신자를 넘어뜨리는 두 대적을 ‘세상과 자기 자신’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이 두 가지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신자라고 해서, 거듭났다고 해서 이 땅에 사는 한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의 단맛에 이끌려 죄를 짓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세상적인 일에 매몰되어 돈을 사랑하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일에 정신을 홀린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교회 사람들보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들과 짝하고 은근슬쩍 쾌락을 즐기는 등 세상 편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이겨야 되며 이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일 5:4~5를 보세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정말로 당신이 거듭났다고 믿으신다면 당신은 이미 세상을 이긴 자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앞으로 이길 것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미 이겼으므로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세상 일을 실패한다 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일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결국엔 당신은 세상에서 승리한 자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 시합에서 이미 이긴 시합을 녹화로 보는 사람은 느긋하게 경기를 즐깁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처세하는 기본적인 지침입니다.
2)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나무로 치면 뿌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썩은 뿌리가 다시 살아나면 나무가 자랍니다. 혹은 뿌리를 뻗지 못하던 뿌리를 뻗게 해 주면 건강한 잎과 열매가 맺어집니다. 저희 집사람은 취미로 집 베란다에다 여러 화분을 두고 나무와 꽃을 심어 키웁니다. 그중에 고무나무가 제일 빨리 자랍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화분을 더 큰 것으로 마련해서 갈아주었더니 키가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쑥쑥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라는 녀석이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성령님이 그것을 해체시키자 통로가 펑- 하고 뚫려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다 연결되고 협력하여 무엇이든 좋게 되어지고 선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9)
3) 새로운 목표를 두고 살게 됩니다.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사람에겐 이제 새로운 인생의 목적이 주어집니다. 이 목적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공통의 사명과 개인적인 소명으로 구분되어집니다. 먼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히. 카보드/헬. 독사)이라는 말은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신현현’과 ‘구원의 행동’ 또는 ‘심판의 행동’과 연관시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시내산을 구름으로 가리운 ‘맹렬한 불’로 표현됩니다(출 24:16~17). 하나님의 이 영광은 구름과 불 가운데서 이스라엘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성막과 완공된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과 늘 함께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제 복음의 시대를 맞아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왜 행복한 존재인가를 묻는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실로 제아무리 크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우주 만물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없는 존재보다 더 불행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 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에게 각각 다른 직분과 은사를 주시는 이유도 바로 이 영광을 위한 일에 동참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그 누구도 이 일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4)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독려하면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Love is from God)(요일 4:7)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겐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 없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오직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을 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때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까?”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거듭났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습니다”입니다.
열이 불에서 나오듯이, 빛이 태양에게서 나오듯이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겐 사랑이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할 것입니다.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내 형제와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인간에게 사랑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적 사랑인 ‘에로스’나, ‘필로스’가 아니라 ‘아가페’를 가리킵니다. 육신적 사랑은 일시적이고 유한하며 자신과 관계된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렘 31:3)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합니까? 먼저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목소리에 복종하고, 그의 길을 걸으며, 그를 가까이 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된다고 하였습니다(신 6:5~9, 11:22, 30:20). 다음으로 신약 성경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하면서 한 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말합니다(마 10:37~39). 나아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 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마 22:37~40).
거듭남의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불화와 반목과 분쟁의 자리에는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자리에 오시어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오직 나의 유익을 위해, 혹은 내 자식을 위해 사랑하는 능력밖에 가지지 못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서 더 큰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결어
지금까지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 듣고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탄생’이자 ‘새 생명을 가진 존재로의 전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락한 인간은 왜 거듭나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거듭난 자의 주요한 특징과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요한 1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외 신학적으로도 거듭남의 교리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교회사에서 줄기차게 제기되고 지금도 그런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이런 주장들의 허실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거듭난 척하는 위선자인가, 아니면 전혀 거듭남을 모르는 무지한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 부류에 당신은 어느 곳에 해당하십니까? 만약 미심쩍다면 구원의 확신에 대해 다시 점검하시고 교리적으로 연구하시고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거듭남에 대해 연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당신은 이미 거듭난 사람임을 선포합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