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에서 돌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성경에도 “내양을 돌보라”는 말씀도 있다. 그런데 돌본다고 하면서 자칫 괴롭히든가 성가시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어떤 이는 “상대방에 대해 더 잘 알면 알수록 더 잘 돌볼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꼬치꼬치 물어보기도 한다. “결혼은 언제 했냐”, “어떻게 만났냐”, “애들은 몇이냐”, “왜 그렇게 늦었냐, 빨랐냐” 등등으로 상대방을 피곤하게하고, 또 괴롭히는 인상을 주는 듯하기도 한다. 이것은 Pestering이다. 마치 파출소장이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한다. 이건 돌봄이 아니라 괴롭히고, 더 나아가 피해를 준다.
또 한 경우는, 소그룹에서 기도해주겠다며 새 신자를 둘러싸고 앉아서 기도제목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그 젊은 새댁은 기도제목으로 여러 가지 사생활을 오픈했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잘 마쳤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날에 그녀의 사생활이 전교회에 퍼졌다. 누군가가 여기저기에 얘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돌봄이 아니라 피해를 준 것이다.
임상목회에서도 이것은 매우 강조되는 훈련들 중의 하나이다. 신뢰성 confidentiality이라는 것인데 남에게 들은 얘기 중 사생활에 대한 것은 제삼자에게, 또는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공적으로 알려진 것은 또 얘기해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극히 사적으로 나눈 얘기는 오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봉함된 사적인 편지와 같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때, 학교에서 보내온 성적 내용이 든 서류봉투에 뜯어본 흔적이 있다면, 회사 쪽에서 봉투 안의 내용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적으로 들은 얘기는 그 정도로 신중하게 다루라는 뜻으로, 혼자 알고만 있으라는 얘기이다. 심지어는 그런 내용은 어디에 적어놓지도 멀라는 것이다.
남을 돕고 돌본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너무 좋지만, 지나치게 내 쪽에서 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처신하다보면 그것은 오히려 성가시게하고 괴롭히기까지 하게 된다. 요즘은 카톡에서 단톡방을 많이 쓰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의 단톡방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한국과 케냐는 시차가 다르니, 한국에서 아침 9시에 카톡보내면 케냐는 새벽 3시라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결국은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탈퇴한 적이 있다. 서너 번의 이런 경험이 있고 난후 단톡방에 가입하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이런 경험을 몇 번 겪은 후, 내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지속적으로 카톡을 보내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매우 조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경우에 우리는 ‘돌본다’는 생각으로 pastoring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괴롭힘 pestering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이, 그리고 또 종종 있게 된다. 돌봄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