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 실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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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데이’를 앞둔 지난 주말에 서울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 등 154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다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이 끔찍한 참사는 이태원역 인근 해밀턴호텔 뒤편 비좁고 경사진 골목에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했다.

사고가 난 곳은 평소 주말에도 북적이는 곳이다. 당시 이곳엔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과 식사를 위해 이곳을 찾은 시민 등 평소보다 서너 배나 많은 인파가 몰려 언제든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이 평소와 다름없는 치안업무에만 신경 썼다니 결국 안이한 안전대책이 대형 인명 참사를 키운 셈이다.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렸더라도 실내가 아닌 길거리에서 테러나 건물붕괴 사고가 아닌 사람끼리 뒤엉키며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21세기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일각에선 미국의 문화인 ‘핼러윈’이 한국에 건너와 변질된 걸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핼러윈’이 미국에선 어린이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축제인 반면에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술 먹고 클럽에서 밤새 춤추는 유흥문화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어찌됐건 그것이 이번 사고의 본질이라 할 순 없다. 유흥문화가 참변을 일으켰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논리의 비약이다. 일어나선 안 될 안타까운 사고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사고 현장에 있었던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희생자와 그 유족, 부상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11월 5일까지 일주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애도기간’에 정부 부처와 모든 관공서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국민적 추모 분위기를 위해서다.

비극적 사태 앞에서 여야가 정쟁 중단을 선언했다. 정치권이 최근에 한 일 중 모처럼 가장 잘한 일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진석 의원의 “애도 기간만이라도 여야가 서로 정쟁을 멈춰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야당인 민주당이 즉시 호응한 것이다.

10월 30일 주일 아침에 비보를 접한 교계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긴급담화문에서 “거룩한 주일 아침에 지난밤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사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할 유가족 여러분께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시길 빈다”고 전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한교총)도 긴급 성명에서 “이태원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이들과 유가족에게 마음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하며 부상당한 이들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변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상자들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부상자들이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한기총이 함께 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종교계까지 모두 희생자를 추모하며 애도하는 분위기인데 이런 참사마저 쟁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민주당의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은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태원 참사를 청와대 이전과 결부시키는 발상이 참으로 놀랍거니와 그에 앞서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런 돌출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비극적 사고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 때도 무수히 있었다. 유언비어와 괴담을 퍼뜨려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정략적이라도 비극적 참사를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절제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건 희생자를 모욕하고 유족에 가슴에 대못을 박을 뿐이다.

교계는 당초 10월 30일 주일 오후에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기도회와 국민대회를 준비했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폐기를 촉구하는 대규모 거리행사다. 그러나 바로 전날 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한교총과 CTS기독교텔레비전이 11월 5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광장에서 열려고 했던 ‘코리아퍼레이드’도 잠정 연기됐다. 한교연은 11월 1일 가지려던 국가 조찬기도회를 11월 10일로 연기하면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애도를 겸해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교계가 오랫동안 준비한 중요 행사를 모두 취소, 또는 연기한 건 매우 잘한 결정이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희생자를 애도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건 당연하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가 할 일이 더 있다.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그리고 부상자들의 조속한 쾌유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한교연은 긴급담화문에서 10월 30일 주일에 회원교단과 단체들에 특별기도를 요청했었다. 한국교회와 온 성도들이 이번 수요일 예배와 주일예배 시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기도했으면 한다. 지금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