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함께하는 세상을 꿈꿨던 故 문동환 교수의 삶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해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한신대학교(총장 강성영)는 지난 17일 오후 3시 경기캠퍼스 ‘문동환 교수 기념 조형물(오월계단 앞)’과 기념 전시관(늦봄관 4층) 제막식을 가졌다. 이번 기념사업과 행사는 문동환 교수의 ‘너와 나 함께하는 세상, 생명문화-떠돌이 공동체’의 뜻과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유족, 한신대 교수, 동문과 제자, 외부 관계자 등 200여명의 기부금으로 제작·진행되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 내·외빈, 기독교교육과 동문 및 학교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동환 교수 기념 조형물 건립위원회 위원장인 강순원 교수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김상근 목사의 여는 기도, 작품 경과보고 및 제막, 홍순관 작가의 인사말, 김창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와 강성영 한신대 총장의 환영사, 문동환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읽기, 윤광호 목사와 안재학 목사의 축하공연, 문동환 선생님을 기억하며 나누는 이야기(제17대 국회의장 임채정, 두레방 유복님, 신학대학 학생회장 최섬김, 신학대학장 이영미, 21회 졸업생 이문우, 기독교교육과 동문 박민), 늦봄학교 학생들의 풍물공연, 문영미 가족대표의 인사말, 김성재 교수의 닫는 기도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 조형물 행사 후에는 늦봄관 4층으로 이동해 기념 전시관 제막식도 가졌다.
먼저 홍순관 작가는 기념 조형 작품, ‘떠돌이 꽃’을 소개하며 “문동환 목사님께서는 민중에 대한 애매한 해석과 불확실한 해석이 아니라 완전히 버려진 자들, 떠돌이들을 민중이라고 정의했다”며 “완전히 버려진 것들을 주어서 다시 민족의 꽃으로 표현했고, 이 형상이 되도록이면 우아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뜻을 뽐낼 수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약 3×1.5×1m의 크기로 스틸, 스테인리스, 구리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역사에서 밀려난 민중(떠돌이들)을 버려진 기계 부품들로 이미지화하여 다시 역사의 주인공(부활의 꽃)으로 태어난다는 문동환 목사의 “떠돌이 신학”을 형상화했다.
김창주 기장 총무는 “우리 시대의 스승, 문동환 목사님은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는 민중 교육의 꿈, 떠돌이의 꿈을 꾸셨고 우리들에게 그 꿈을 나누어 주셨으며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셨다”며 “오늘 그 제자들이 이 자리에 모여 선생님을 기리며 기림비 제막식을 거행한다. 솟아나는 샘과 불씨를 받은 여러분에게 축하를 보내며 동시에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고백한다. 이 자리는 단순한 한 개인의 이름을 추모하고 높이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의 꿈과 소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스승을 기억하고 기림비를 세우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축하한다”며 환영사를 전했다.
강성영 총장은 “사실 오늘 이 작품은 홍순관 선생님의 작품이기도하지만, 강순원 교수님의 졸업 작품이기도 하다. 강 교수님이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퇴직하시게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셔서 하늘에 계신 문동환 교수님께서도 그 수고를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며 “양산동 교정에 문익환 목사님을 기념하는 공간이 있는데 이렇게 우리 민주화 광장인 오월 계단에 문동환 목사님까지 모시게 됐다.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고, 계속 이분들을 기억하고 소환하는 것이 한신의 미래를 이끌어 갈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이 (가을)햇볕도 즐기시고 마음 편안하게 행복한 시간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고 환영사를 말했다.
임채정 제17대 국회의장은 “정치인으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계셨고, 재야에서는 문동환 박사와 문익환 목사님 등 여러 석학들과 성직자분들이 힘을 뒷받침 하면서 우리 역사와 정치의 바퀴를 바꿔놓았고 굴러가게 만들었다. 그것이 문동환 박사가 만들어 앞장서신 국민평화민주연합(이하 평민련)이 갖는 정당적 또는 정치적 의미일 것”이라며 “문동환 목사님이 남기신 족적 가운데 덜 알려져 있는, 그러나 앞으로 크게 개발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평민련의 성과였고, 우리가 감사하고 잊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릴 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와 역사에 희망을 갖게 만드는 어른들이 계셨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셨던 분이 문동환 박사였다”며 회상했다.
한신대 제21회 졸업생인 이문우 장로는 “문 박사님은 여신도회 특강을 많이 하셨는데, 한 개인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 인간 평등과 평화를 강조하시면서 생명문화 운동을 열심히 강조했다. 문 박사님의 교육을 받은 여성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감을 갖도록 변화를 시켜주신 분이 바로 문동환 박사님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문 목사님은 서로 돕는 공동체의 삶을 추구함으로써 정의와 평화, 평등을 주장하셨고, 그가 머무는 곳에는 더불어 사는 평화와 기쁨과 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조형물로 다시 오셨지만 이 조형물이 민중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듣고 바로 ‘문 박사님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한신동산의 5천여 명의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교수님들과 직원분들이 그분의 정신을 이어받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표로 문영미 씨는 “행사를 위해서 이렇게 모두 이렇게 먼 길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정말 아버지가 잘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오늘도 새삼스럽게 들었다”며 “우리 개인의 삶에서 쓸모없이 여겨졌던 것들이 이렇게 다시 꽃으로 탄생한 것처럼,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끝으로 김성재 교수는 “여러분, 눈 뜨고 떠돌이 꽃을 보시고, 문 박사님도 보시고, 저 푸른 하늘도 보시고, 한신도 보시고, 여러분들이 오늘 함께 나눈 모든 것들이 다 우리가 문 박사님과 함께한 우리의 기도라고 생각하고, 우리 전체의 기도를 히브리 떠돌이의 하나님, 떠돌이의 친구가 되고 떠돌이를 사랑해서 끝내 자기의 생명까지 주신 예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를 우리가 함께 드리자”며 “떠돌이의 하나님, 떠돌이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떠돌이의 꽃이 되신 우리 문동환 선생님과 함께 앞으로도 역사에 눈 감지 않고, 떠돌이 민중에 눈 감지 않고, 우리 이웃에게 눈 감지 않고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며 기도했다.
기념조형물 제막식 후에는 늦봄관 4층 기념 전시공간으로 이동해 제막행사를 가졌다. 기념 전시 공간에는 문동환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과 저서, 편지와 유품으로 카세트, 돋보기, 안경 등이 전시됐다. 문동환 교수의 사진과 함께 생전 육성과 활동 모습이 영상으로 송출되게 했다.
한편 이날 기독교교육과 동문과 제자들은 제막 행사전인 12시부터 공동 식사 후 늦봄관 4층 세미나실에서 1시부터 “동꿈제: 동환이의 꿈을 잇는 제자들”이라는 이야기 마당을 갖고 문동환 교수에 대한 추억을 함께 회상하며 앞으로 다양한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다짐의 시간을 가졌다.
문동환 교수는 민족독립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북간도 명동촌에서 친형인 늦봄 문익환 목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목사로서의 사명에 뜻을 품고, 일본 동경신학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 미국 웨스턴 신학교, 프린스턴 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 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61년부터 한신대 신학과(기독교교육전공) 교수로 재직했다. 문동환 교수는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2019년 소천할 때까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라 자기혁명을 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거짓과 불의와 싸우며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삶으로 증언했다. ‘해방신학과 인간해방기독교교육’, ‘민중신학과 민중교육’, ‘민중과 떠돌이들’의 목자였다. “새벽의 집”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생명문화공동체’를 추구했다. 군사정권 시절 두 차례 투옥과 해직의 고초를 겪었음에도 재야 민주화운동과 국회의원 활동을 했고 말년까지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섰다. 문동환 교수는 아픔과 질곡의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사랑으로 껴안은 ‘살아 있는 근·현대 박물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