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앙생활: 연단이란 무엇인가?(2)

오피니언·칼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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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 1:5~7
이태희 목사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6-7)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불같은 시험으로 연단하여 “확실한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칭찬과 영광 그리고 존귀함”이라고 하는 상을 베풀어 주신다.

사도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역시 이와 같은 환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음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고백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1:3-4)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간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자신이 겪은 환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환란을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 때문에 환란 가운데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1:5)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후1:6-7)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1:8-9)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후1:10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한 환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바울은 앞으로 자신이 어떤 환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환란을 당하는 누구나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바울이 경험한 동일한 위로와 자비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확실한 믿음은 푸른 초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환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사물에 몹시 놀란 사람은 비슷한 사물만 봐도 겁을 낸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이와 비슷한 증상을 의학적인 용어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고문, 자연 재해나 사고 등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경험들.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별거와 이혼, 질병, 실직, 재정 악화 같은 사건을 통해 경험한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사건 이후에도 그 충격과 공포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적인 고통과 공포를 느끼게 되면서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 뿐 아니라, 심장병과 같은 신체적 질환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 생활 자체가 어려워 지는 것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장애”로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다윗이 사울에게 가서 골리앗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라.” 그 때 다윗이 사울에게 말한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는데 하물며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될 것입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7:37)

그 후에도 다윗은 계속해서 사울로부터 연단을 받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연단 속에 다윗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고,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정말로 살아 계시며, 그래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임을 더욱 확고하게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하나님의 도구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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