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정의당의 일부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안’은 지난 5월 민주당이 단독으로 개최한 공청회에 이어 국회 법사위 통과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목회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돌입한 건 한국교회가 좌시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를 담고 있다.
국회 정문 앞 1인 시위는 지난달 29일 서울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에 이어 6일엔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에 의하면 국회 앞 1인 시위는 오는 13일에는 김일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20일에는 한기채 목사(기성 증경총회장)가 이어가게 된다고 한다.
첫 시위자였던 김운성 목사는 영락교회라는 한국교회의 상징성과 함께 대형교회 목회자로서 처음 현장 시위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락교회는 예장 통합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고 한경직 목사가 이북에서 월남해 서울에 개척한 교회로 고 한 목사의 투철한 나라사랑 정신과 고아원과 미션스쿨을 세워 육영사업에 앞장서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 온 교회로 유명하다.
지난 2018년 3월 이 교회에 부임한 김운성 목사는 고 한경직 목사가 남긴 목회적 유산을 성도들과 한국교회에 전수하면서 나라와 사회를 위해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왔다. 이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차별금지법 반대와 같은 예민한 이슈에 직접 뛰어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 목사가 차별금지법 반대 1인 시위에 직접 나서게 된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오로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마음에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앙의 연장선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운성 목사에 이어 6일 1인 시위를 한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 기도해야 한다며 연합기관과 주요 단체들을 한데 묶어 기도회를 여는데 앞장 선 목회자다. 지난 2020년 8월 온누리교회에서 한교총, 한교연 등 연합기관과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기도회는 ‘차별금지법’ 반대 열기를 전국교회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이 목사는 지난 2020년 7월 5일 온누리교회에서 주일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작심한 듯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상정된다면, 국회 앞에서 시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번 국회 정문 1인 시위는 그가 성도들 앞에서 한 약속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1인 시위가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 거리집회에 비해 메시지 전달에 한계가 있고 폭발력도 덜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바쁜 목회일정 중에 직접 국회 앞에 가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상징성이 주는 기대효과가 분명 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등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현재 국회 법사위 통과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법사위에서 통과되면 바로 본회의 상정되고, 법안 통과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비록 지금 다른 정치적 현안에 밀려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게 국민여론이다. 여론에 따라 정치적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19대 국회 때까지 7건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모두 자동 폐기된 건 당시 교계가 거세게 반발한데다 국민 여론도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법안 추진의 동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차별금지법’은 발의된 상태에서 소관 부서인 법사위 문턱을 넘는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지난 5월에 민주당이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무리하게 단독 공청회를 연 것도 법안 제정 절차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여론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성공회 모 신부는 “그리스도인들도 ‘차별금지법’을 적극 지지한다”면서 “종교인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일부 의견이 과잉 대표된 것”이라고 발언해 교계에 충격을 줬다. 한국교회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한국교회 다수의 시각에선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식인 것이다. 일부 진보진영을 제외하고 한국교회 거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였다면 차마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적극 지지한다는 말은 차마 하진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인들 역시 이런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에 귀 기울이는 척하지만 실은 자기들이 원하는 말만 가려서 듣는다. 그러고 나서 그걸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이 문제를 언제든 꺼내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미적대고 있는 건 이 법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아직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건 여론의 추이를 보며 기회를 살피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여당인 국민의힘도 개별적으론 반대의 의견을 표하고 있으나 역시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목회자들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건 건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민주당 일부 의원뿐 아니라 여야 전체에 주는 큰 울림과 메시지 성격을 담고 있다. “한국교회는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그래도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한국교회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