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사원 對 전직 대통령의 “무례”

오피니언·칼럼
사설

최근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에 나서면서 여야가 국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다시 격돌하는 양상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에 대해 “무례하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치보복”이라며 엄호에 나서는 등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을 서면으로 조사하려 한 내용은 지난 2019년 9월 소연평도 해상에서 근무 중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돼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 사건이다. 이 씨 유족들은 이 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돼 불태워지기 전까지 6시간 동안 문 전 대통령이 어떤 보고를 받고, 무슨 조치를 했는지 밝혀줄 것으로 요구했고, 감사원은 그걸 조사하기 위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 조사서를 보낸 것이다.

감사원의 조사는 보기에 따라 ‘정치적 압력’으로 비칠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적법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감사를 문제 삼는 자체가 더 이상하다. 이런 조사를 “무례하다”며 발끈한 전직 대통령의 태도야말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야당 대표까지 나서 “과거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다른 속셈이 의심스럽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때도 감사원이 서면조사를 한 전례가 있다. 이중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면조사에 성실하게 응했다. 전직 대통령 중엔 조사에 응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무례하다”는 식의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감사원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나서게 되기까지 문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지 않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이 씨 유족에게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해 놓고 끝내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퇴임 직전에 관련 내용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 공개를 막음으로써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낯설고 어색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퇴임 후 불기소특권이 없어지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이다. 그런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그 땐 꿈에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는 당하지 않지만, 국정을 잘못하면 탄핵을 당해 직에서 물러나는 게 민주국가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이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한 조사마저 거부하고 “무례” 운운하는 것은 전임자를 향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요구했던 문 전 대통령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오죽하면 지금이 ‘왕정시대’인가 착각이 들 정도라는 반응이 나오겠나.

전직 대통령은 임기 동안 나라를 위해 수고했다는 점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자리지만 역사적인 평가와 민심, 그리고 성과 면에서 퇴임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엄연히 존재한다. 문 전 대통령 이전에 두 대통령이 임기 중에 탄핵을 당하거나 재판을 받고 구속된 것 역시 대통령이란 자리의 엄중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직 대통령이 감사원의 적법한 절차에 따른 조사를 “무례하다”고 일축하고 야당이 정쟁으로 삼고 있는 건 보기에 따라 매우 불편하다. 이번 감사원 조사를 거부할 권리도 있지만, 유가족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의 의혹도 큰 만큼 전직 대통령으로서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진실 규명 차원에서 응당 협조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북한은 이틀에 한 번꼴로 탄도미사일을 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24차례나 된다. 북한이 최근 들어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이유는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향후 ICBM 발사와 7차 핵실험으로 가려는 수순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려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문제는 이런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국제사회가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됐지만, 결론 없이 산회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북한의 든든한 뒷배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처럼 막가파식 도발을 일삼게 된 데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굴종도 한몫했다. 북한이 요구할 때마다 굽신거리며 다 들어주고도 돌아온 게 탄도미사일 도발과 핵무장이라면 ‘평화’ 대신 ‘파탄’을 구걸했다는 얘기다.

북한이 해수부 공무원을 사살하고 불태운 사건은 많은 의혹에 싸여있다. 그러나 판문점과 평양에서 ‘깜짝쇼’를 방불케 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사이에 베일에 싸인 무수한 진실에 비하면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전직 대통령이 감사원 서면조사를 “무례하다”고 받아친 건 혹시라도 이런 비밀이 드러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가 아닐까. 아니라면 자신을 절대 건드려서도 건드릴 수도 없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까. 분명한 사실은 국민은 감사원의 조사에 전직 대통령이 느낀 ‘무례’보다 국민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간 상대에게 임기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 끌려다닌 대통령의 ‘무례’에 더 화가 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