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교단의 9월 총회도 거의 끝났다. 그리고 또 새로운 교단들이 생겨났다. 신학이나 교리적 해석에 따른 신앙관으로 순수하게 새로운 교단이 설립되는 경우란 현대 들어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새로운 교단의 출현은 기존 교단의 분할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단 단체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목사직분자들은 교단의 뿌리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개로 나누어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을 죄(악)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다시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실례들이 반증하듯이, 두 개를 하나로 합치면 결과는 세 개가 되고 만다. 통합의 노력이 오히려 분할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분열과 분할은 악(죄)인가?
그렇다는 관점의 근거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서의 내용일 것이다. 교회 내에서 여러 파로 나눠진 내부 분열의 문제를 사도는 가장 먼저 언급하고 책망하면서, 그 원인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무지(無知)와 분별(分別)의 결여에 있음이요,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미성숙이라고 하였다. 교단이나 연합기관의 분열과 분할은 이런 점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분열(分列)’의 생물학적 의미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첫 사람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생물학 시간에 배웠던 그 ‘세포분열’을 통해 이루어진다. 분열(division, separate)은 창조의 자연 질서이다. 분열은 단순성(單純性)이 수다성(數多性)으로 변화되는 근간(foundation)이다. 분열과 분할이 없으면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 아담으로 시작하여 분열의 수다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구성하고 성취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좋은 것은 곧 선(good)이고, 최고의 선(Goodness)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이시다.
다시 논제로 돌아와서, 성경, 특히 바울의 서신서를 통하여 지적하고 교훈하는 바는, 기구조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신앙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관한 것이다. ‘하나 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앙 행위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자세와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기구조직을 단 한 개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엡 1:22,23 ; 2:21,22 ; 4:16). 비대한 기구조직은 막강한 권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그런 권력은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부패하기 마련이다. 만일 단 하나가 선이라면, 지구상에는 단 하나의 교회만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단이나 연합기관도 필요 없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다양성 가운데 있는 조화이다.
생물학적 명칭으로 ‘분열’은 선도 악도 아닌 객관적 현상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케 하시며, 이 과정에 인간의 악마저 용납하신다. 가장 분명한 최초의 실례가 수메르 지역의 니므롯으로 인한 바벨탑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은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신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마저 2차 선교 여행 때 바나바와 견해 차이로 갈라섰다(분열, 분할).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수리아의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행 15:41).
우리는 흔히 인간의 악(죄)에 대한 정의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죄의 근원(원죄)을 아담과 하와에게 돌린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악한 의지라는 것은 자연본성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본성에 상반되는 것인데, 그 까닭은 악한 의지는 일종의 결여이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14.11.1.).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견해를 받아들였다. “어떤 존재가 결여되는 한 악이라고 불린다”(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5.3.). 한 마디로 악이란 선의 결여이다. 선의 결여란 결국 최고선이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있어서의 부족함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이 부족함(결여)을 용납하시고, 오히려 악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분열과 분할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따라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무지와 어리석음, 그리고 탐심으로 인한 분쟁과 분열을 회개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교단이 둘, 셋으로 갈라지는 것은 목사들의 교권욕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것까지 이용하여 그분의 나라를 효율성 있게 확장해 나가신다. 심지어 사단의 역사마저 허용하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교단과 연합기관의 분할은 악이 아니다. 기구조직의 분할은 서로 용납 인정하고, 분열의 논쟁은 회개함으로써 복음 확장의 새로운 발판으로 삼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