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기어코 1400원을 돌파했다. 그간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후에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닥친 바 있어 한국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가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놓이긴 했지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경제 불황을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23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09.7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장 마감 기준으로 2009년 3월20일(1412.5원) 이후 13년6개월 만이다.
환율이 급등한 이유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미 연준은 전날 FOMC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2.25~2.5%에서 3.0~3.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이는 지난 6월과 7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다. 미국의 이번 금리 인상으로 한국(2.50%)과 미국(3.00∼3.25%)의 기준금리는 역전됐다.
전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도 더욱 심화되며 원·달러 환율은 결국 1400원을 넘어섰다. 이는 1997년 '자율변동 환율제' 도입 이후 세 번째다.
앞선 두 차례는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후에는 어김없이 경제 불황이 닥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에 맞먹는 경제 위기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 상으로도 한국은 복합 경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환율의 고공행진 속에 물가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고 있고, 금리는 계속해서 올라 연 2.50%가 됐다. 금리는 연내에 두 차례 더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수출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반도체 하강 국면, 중국 수출 감소 등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먹구름이 더욱 짙어졌다. 이달 1~20일 무역수지도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약 25년 만에 6개월 연속 무역 적자 '경고등'이 켜졌다.
'3고(高)' 상황과 무역수지 적자 속에서도 방역조치 해제에 따른 소비 회복세와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고용 훈풍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상쇄했지만, 이제 소비와 고용 흐름도 순탄치 못한 상황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전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당국 수장들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다소 확대됐다. 경제팀은 긴밀한 공조 하에 '넓고 긴 시계'를 견지하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발생가능한 주요 리스크에 대한 시나리오와 상황별 대응조치를 선제적으로 점검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시장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아직 경제 불황을 언급하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험해진 건 사실이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위기 상황과는 다른 환경인 것도 사실이다"면서 "너무 패닉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문제되는 건 전 세계 통화가 평가 절하되기 때문"이라며 "펀더멘털 상으로 우리나라가 나쁜 편은 아니고 외환보유고도 상당히 많이 가졌다. 미국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1400원 언저리에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통 불황이라고 하면 물가가 떨어지는데 지금은 물가가 오르는 압력이 크다"면서 "환율이 오르면서 경기나 실물경제의 하방리스크는 커지고 물가는 상방리스크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달러 유동성도 대비해야 한다"며 "시장의 변동은 심리적 요인에 많이 좌우돼 정책 메시지를 일관되고 안정감 있게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