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보포럼(대표 배창돈 목사)이 지난 5일 오후 평택대광교회에서 ‘세상을 섬기는 제자도’라는 주제로 ‘옥한흠 목사 12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배창돈 목사(평택대광교회)는 인사말에서 “한국교회는 어느 때보다 위기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복음전파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고, 주일학교의 감소와 청년들의 이탈은 교히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제자훈련이라는 사역은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이 포럼을 통해 옥한흠 목사님의 헌신이 지속적으로 열매 맺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4개 세션의 강의에선 각각의 강사들이 고(故)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을 소개하고, 그의 제자 훈련의 공적과 한계를 분석·비평하며, 옥한흠 목사의 목회 신학의 한 개념인 ‘사도성’과 ‘미션얼처치(Missional church)’의 개념을 연결하여, 현재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 한국교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강의 중간에 3개 세션에서는 ‘사역현장 나눔’시간으로 각각 박준호 목사(판교사랑의 교회)와 김경옥 목사(푸른사랑의 교회), 양승언 목사(다움교회)가 옥한흠 목사의 목회신학의 이해와 사역현장에 경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각 교회에서 적용했던 사역 내용을 나누었다.
김명호 목사(일산대림교회 담임)는 ‘은보의 보내심 받은 공동체 개념’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강의는 크게 3가지 범주에서 논지가 전개됐는데, 이것은 교회론적 개념인 ‘사도성’, 선교적 개념인 ‘미션널처치(Missional church), 그리고 ’평신도 사역‘이다.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은보 옥한흠의 제자훈련 목회 철학은 교회에 대해 ‘이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이며, ‘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하며, 교회의 ‘사도성’을 회복하고, ‘만인 제사장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라며 “옥한흠 목사는 이런 목회철학을 ‘평신도를 깨운다’라고 요약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용규는 평신도 운동이 옥한흠 목사의 세 가지 신학적 발견에서 출발한다고 정리했다. 이 세 가지는 ‘교회론의 재정립’, ‘사도성의 재발견’, 그리고 만인 제사장직의 회복‘이다”라며, 기본적 개념을 제시하고, “제자도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목회의 방향과 전략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2009년 옥한흠 목사의 디사이플스 대담에서 “교회의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돼 버렸습니다”라는 발언을 인용하며,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을 설명했다.
그리고 사도적 교회에 대해서는 “’참된 교회는 사도적 교회‘다. 사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 사도들이 기록으로 전해준 성경을 믿고 따르는 교회가 사도적 교회다. 사도들이 외친 것처럼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사도적 교회다”라고 짧게 정의한다. 또한 김 목사는 사도성을 오늘의 목회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는 “어쩌면 ’코페루니쿠스적인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통적인 목회 패턴과는 부딪히는 요소들을 안고 있다. ’사도성‘을 강조하면 '모이는 교회'에 치중하던 목회의 관심이 '흩어지는 교회'로 옮겨간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전략적으로 잘 흩어져서 선교적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라며, 특히 ’평신도‘라는 기준에서 교회의 패러다임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성근 목사(일상생활사역연구소 대표)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에 대해 치밀하게 두 가지 영역에서 공적과 한계를 분석하며, 이것을 ’모더니즘과 크리스텐덤‘으로 설명하고, 그 대안으로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미션얼(Mission얼): 선교의 의미를 담은 ’미션‘에다 정신, 생각, 태도 등을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 '얼'이란 말을 부치는 방식으로 음차-를 제시했다.
첫째로 '모더니즘'의 문제들 들며,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이 교회의 사도적(혹은 선교적) 사명과 평신도의 중요성을 분명히 천명하였지만, 지식 전달에 치우치고 교회 내부의 활동에 치우쳐서 결과적으로는 개인주의 영성과 편향된 공동체성을 보였으며, 하나님나라에 부합한 제자도를 놓쳤고 총체적 선교 개념과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지 물어야 할 것”이라며, 이에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이 시대적으로 모더니즘의 합리적 이성을 가진 개인의 지식의 축적이 변화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전달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 제자훈련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 모더니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크리스텐덤'의 문제를 얘기했다. “교회내부의 활동에 치우쳤다”라며, 옥한흠목사가 “지상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다”라고 교회에 대해 오늘날 보기에도 매우 균형잡히고 통전적인 정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으로서 에클레시아와 세상으로 ’보냄 받아‘ 흩어지는 교회의 디아스포라의 역동이 균형 있게 강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 목사는 모더니즘의 문제에 봉착해 있는 제자훈련을 탈근대와 포스트모더니즘사회, 포스트모던 미션얼 제자훈련으로 어떻게 탈바꿈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맥락화‘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더니즘의 ’개인주의적인 신앙‘에 대한 강조가 보다 ’공동체적인 신앙‘에 대한 강조로, 신앙의 성장을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일종의 ’순례자의 여정(Journey)‘으로, ’지적이고 과학적인 변증‘보다는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살아냄으로 보여지는 소위 ’체화된 변증(Embodied Apologetic)‘으로, 영웅(hero)을 강조하고 주변부를 무시하는 관점에서 ’주변부‘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으로, 지도력 문제에 있어서도 ’카리스마적 지도력‘보다는 섬기는 ’상황적 지도력(situational leadership)‘으로, 다양한 모습의 변화, 무엇보다도 시각의 변화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라며 종합적 이해를 던졌다.
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는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과 제자훈련은 탄탄한 교회론을 구체화 할 방법론으로 제자훈련이라는 새롭고 놀라운 방식을 과감히 도입하여 한국교회에 새로운 리더십의 발현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이라는 목양의 시스템을 배워갔고 더 많은 성도들의 깨우침과 소명의 발견, 일터에서의 제자도를 실천하는 파급력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대형교회로의 성장이 비록 사랑의교회가 갖고 있던 제자훈련이라는 구조를 어떻게 변질시켰는지 아니면 더욱 고도로 치열하게 세워나갔는지는 다른 이들의 탐구의 영역이라고 놓아두고 싶다”라며 긍정적인 측면과 비판적인 목소리를 함께 내놓았다.
김희석 목사(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교회 정체성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완성으로서의 ‘선교’에 있다고 본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구약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구약에서 선교란, 공간과 시간과 민족들에 있어서, 그리고 모든 피조세계의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가 점차적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었고, 그 확장된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장에는 ‘안으로의 부르심’과 ‘밖으로의 보내심’이라는 두 측면이 함께 공존하는 힘으로 존재하였다”라며 ‘구약에 나타는 선교’의 의미를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김 교수는 위의 사실 -‘구약에 나타난 선교’의 개괄적 이해- 을 통해 얻는 통찰을 목회신학적으로 적용하며 결론을 맺는다. “교회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민족이나 사람들에게까지 다가가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그들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경계선 밖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은총과 긍휼을 먼저 실천함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우리의 삶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의와 정의는 단순한 ‘사회정치적인 실천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원리이다. 은총과 긍휼이란 단순히 어려운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구제행위 정도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성품의 실천’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며, 그분의 나라에 속하게 된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가 실천하기를 원하신 삶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