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총신대학교에서 교수 및 총장을 역임하다 은퇴한 김인환 박사가 노숙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해 설립된 구호단체 '참 좋은 친구들'의 이사장직에 올랐다. 이름만 걸어두고 적당히 운신하는 역할이 아니라 노숙자들과 함께 부대끼고 같이 울고 웃으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한다.
구약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김인환 이사장은 1982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에서 학위를 받고 줄곧 총신대에서 교수로 봉직했다. 신학과장, 교무처장, 총신대보 주간, 부총장 그리고 2004년부터 총장을 지내다가 재작년에 은퇴했다.
"나름대로 후회없는 삶을 지내왔지만 저는 결국 서생이었습니다."
김 전 총장의 이런 결정에는 20년 전 만난 김범곤 목사와의 인연이 작용했다. 20년 전 그 당시 이미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한 구호사업을 시작한 김범곤 목사에게 총신대에서 특강을 듣고 또 구호현장에서 노숙인들의 실상을 접했던 기억은 그의 맘 한 구석에 무거운 숙제로 남게 되었다. 지나가는 말로 김범곤 목사에게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이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뜻을 전했단다. 김범곤 목사는 그 얘길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정말로 현실이 된 것.
김범곤 목사는 사실 노숙인들 사회에서는 이미 상징적인 인물이다. '청량리에 최일도, 서울역에 김범곤'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랑의 등대라는 구호단체를 23년간 운영하면서 철저히 그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김 목사에게 위기가 왔다. 경제불황이 길어지면서 사랑의 등대를 후원해온 독지가들이 빠져나가고 기업후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구호사업을 마음만으로 해온 그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 때 김인환 전 총장을 다시 만나게 된다.
"김범곤 목사를 보면 같은 사역자지만 때론 부끄러웠습니다. 그 사람은 노숙자들보다 더 험한 차림으로 일합니다. 서울역 '사랑의 등대'를 건축할 때도 그가 벽돌을 쥐고 날랐고 직접 시멘트를 펴 발랐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은 그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보고 저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었죠."
그래서 김 전 총장은 김범곤 목사에게 위기가 왔을 때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함께 생각했고 기쁜 마음으로 동참을 결행했다.
"김 목사는 뜨겁고 우직한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내가 총장시절 다져놓은 경력과 대외 네트워크를 보탤 겁니다. 이것도 사업이예요. 모든 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거죠. 김 목사를 만나게 한 것도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오늘날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를 함께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다시 돌려놓아야 할 공동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그들을 위한 식사봉사부터 재활과 사회복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이 우리의 공동책임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한 '참 좋은 친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