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1)

오피니언·칼럼
설교
에베소서5:1-7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황성주 박사님이 쓴 “감사의 기적”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보면,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가 있다. 그가 산책하러 나간 사이 강아지가 촛불을 넘어뜨려 집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때문에 8년 동안 번역한 원고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자산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산책에서 돌아온 캐리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번역한 원고가 부족하니 완벽하게 번역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번역하겠습니다”. 어떻게 8년 동안 번역한 원고가 잿더미가 되었는데 이런 관점과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가 무엇일까? 감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오늘 본문 에베소서 5장 1절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 있다. 공유라는 것은 나누어 가진다는 말이다. 먼저 비공유적 속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만이 가진 속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약이 많다. 또한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는 한 치 앞을 알지 못한다. 또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나님은 동시에 어디에나 계시지만 우리는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이런 속성들은 하나님께만 있는 모습들이다.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이 인간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완벽하게 거룩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거룩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함과 오래 참음이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본 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할까? 1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다고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자녀가 첫걸음마를 떼며 걸을 때, 부모는 흥분하고 감격한다.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부모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향해 보배로운 생각을 갖고 계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 사랑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빠를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있다. 그는 자기를 향한 아빠의 사랑을 알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아빠와 같이 되는 것이다. 아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와 같이 말하고 아빠와 같이 놀기를 원한다. 우리 집 아들도 내가 집에 들어오면 인사 대신 숨어서 총을 쏘고 화살을 쏜다. 그리고 아빠를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한다. 양치도 아빠랑 하면서 칫솔질도 똑같이 따라 한다. 샤워도 같이하려고 기다린다.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빨리 군대 갔으면 좋겠다. 그렇다. 아빠를 사랑하는 자녀는 모든 면에서 아빠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을까? 바울은 2절에서 명확하게 말한다.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과 행동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행하시는가?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복을 악인과 불의한 자에게도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적용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의 원수가 되고, 불의함으로 우리를 대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들도, 자기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우리 주님은 “너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뭔가 다른 모습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사랑 가운데서 행하셨기 때문이다(엡5:2).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 자기 몸이 찢겨지도록 주셨다. 하나님의 원수되었고, 은혜를 모르는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물과 피를 흘려지도록 내어주셨다. 그분의 희생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줄 믿는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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