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 그리고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요나와 고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이야기는 물고기 동화 그 이상의 이야기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선지자와 우리가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 많은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이야기와 달리 요나서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에 관한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망설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요나는 선지자요,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니느웨로 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을 미워했기에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요나서는 당시 선민의식 즉,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폭넓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서의 핵심은 ‘회개’와 ‘순종’으로 예수님도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씀을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 16:4) 즉 이 세대는 회개를 통해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2장 38-42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8-39) 요나가 3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무덤 속에서 3일 동안 계셨다가 부활하셨음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누가복음 11장 29-32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눅 11:29-30)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언급되지 않았던 말씀의 선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예수님의 말씀도 가리킵니다. 악한 세대들을 향해 표적을 보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다른 선지자서와는 달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책이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인 요나서 1-2장에서 하나님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도망하려는 요나를 구해주셨습니다. 두 번째 부분인 요나서 3-4장에서 하나님은 니느웨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요나를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된 것에 대해서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서에서 우리는 변함없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명령을 듣지 않고 멀리 달아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잔인한 민족이었던 앗수르 사람들 역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들만의 소유가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여호와이시며 모든 육체의 하나님으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심지어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에게까지 베푸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따라서 요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모든 열방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보여줍니다.
요나서 2장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1-2) 절망적인 상황의 한 가운데서 요나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요나의 믿음의 선언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욘 2:8-9)
요나서는 우리에게 위기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비록 깊은 절망에 빠졌을지라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예배를 통해 감사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감추고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의 중심을 변하는 인간의 감정에 두지 않고 변함없는 진리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
하지만 하나님은 배에 탄 선원들조차 겁에 질릴 정도로 거센 풍랑을 일으키시며 요나를 쫓아가셨습니다. 요나는 결국 자신이 풍랑의 원인임을 고백했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도록 하셔서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그 바다 깊은 곳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도움을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에게 닥칠 심판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에 왕과 모든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금식과 애통해함으로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과는 요나가 애초에 주님으로부터 달아났던 이유였습니다. 그는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께 표현했으며 도성 바깥으로 나가 멸망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한 식물을 통해 요나에게 긍휼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식물을 자라게 해 뜨거운 태양을 가리는 그늘을 요나에게 만들어주었고 이후 벌레를 사용하셔서 식물이 사그라지도록 하셨습니다. 요나가 이 일에 화를 내자, 하나님은 요나가 짧게 살다 가는 식물도 그렇게 아끼면서 십이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도성을 아끼지 않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긍휼에 대한 하나님의 이 영원한 말씀은 신약성경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전능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마다 가장 먼저 세계 만국의 전능 왕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요나서 3장은 예배를 통해 갱신되고 구원받는 특별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더불어 예배 공동체는 함께 모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렸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회개하며 자비를 구했습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욘 3:4-5) 이에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우리는 요나서로부터 예배에 대한 몇 가지 통찰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심지어 경건하지 못한 이들조차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정하게 만듭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 1:15-16)
둘째, 하나님은 어디에서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심지어 암흑의 저 깊은 곳에서도 들으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1-2)
셋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크고 놀라워 ‘죽음의 물고기 입’에서도 건지십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욘 2:6)
넷째,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로우시며 진실된 회개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다섯째,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 대해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요나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닌 자들이 드리는 두 번의 놀라운 예배를 만납니다. 첫 번째 예배는 다시스로 가는 배의 선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으며 풍랑이 멈추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며 섬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 1:16)
두 번째는 니느웨의 백성들이 폭력적인 이교 문화 속에 살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했으며 악한 행실을 돌이켰습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욘 3:8)
요나서에 나타난 이방인들의 예배는 모든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창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그리고 위기와 혼란의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민족에게 영향을 미치며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요나의 내키지 않는 마음과 경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좌우를 분별치 못하고 어둠 속에 사는 민족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배하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열방과 민족들이 구원을 얻기까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