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이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더 이상의 비극이 없도록 근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반지하 거주를 최대한 없애고, 공공임대주택 등 대체 거주지를 공급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입지가 뛰어나고 거주비용이 저렴한 반지하를 대신할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재민 긴급 주거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고 침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긴급지원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이재민 수요를 파악하고, 지자체 및 관계부처와 협조해 침수피해 대응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묵을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LH가 보유하고 있는 매입임대주택 중 비어있는 집을 활용하는 방안이 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을 지상으로 올라오게 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서울시도 최근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내놨다. 앞으로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짓지 못하도록 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 기간을 준 뒤 순차적으로 없애 나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공급되는 임대주택이 반지하 주택의 이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자리가 가깝고 교통이 뛰어나면서도, 같은 값이면 지상층보다 공간이 넓다는 게 반지하의 장점이다. 서울을 벗어나거나 좁은 집에 사는 것보다 근무지와 가까운 점을 중시하는 이들이 반지하 주택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일용직이나 사회초년생 등이 서울에서 출퇴근이 용이한 집을 구하려면 자산이나 노동소득을 고려할 때 대출을 아무리 받아도 반지하 방 정도만 가격이 부담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며 "반지하라는 주거형태를 아예 금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반지하 가구는 일자리가 있는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 LH가 매입 임대한 주택 중 지하·반지하 주택의 계약현황을 보면 현재 계약 중인 3310가구 중 서울이 1541가구로 가장 많았다. 경기 1209가구, 인천 520가구 등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된 모습이다.
LH는 매입입대주택 사업을 추진하면서 반지하의 습기·채광문제, 침수위험 등 열악한 주거환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5년부터 반지하 세대가 포함된 주택의 매입은 중단하고 있다. 또 반지하 가구의 지상층 이주를 추진함에 따라 반지하 주거비율은 감소 추세에 있지만 이주를 거부하고 있는 반지하 거주자도 상당한 상황이다.
이들 전원에 대한 설문조사 및 이주의사 등에 대해 조사했더니, 이주거절 세대 대부분이 임대료 상승·이사비 부담 등을 이유로 지상층 주택으로의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공공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LH 홈페이지에서 공고 중인 임대주택 33곳 중 서울지역 주택은 단 한 곳뿐이다. 이 곳 '서울송파도시형생활주택'은 22.87㎡(약 7평)가 보증금 5503만원에 월 35여만원이다. 자녀가 있는 가정이 거주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비좁은 공간이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4월 내놓은 보고서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에서 "자녀양육가구는 상대적으로 넓은 주거면적이 필요해 원룸형 비주택에서는 거주하기 힘들다"며 "사실상 지하주거가 저소득 자녀양육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비적정주거"라고 짚었다.
국토연구원은 ▲저소득 다자녀가구에 매입임대주택 입주우선순위 부여 ▲입지를 고려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열악한 주거상태를 신혼부부, 장애인 특별공급 등과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하는 공급기준 마련 ▲저소득 자녀양육가구에 대한 별도의 아동주거비 지원사업 신설 등을 제안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 장기적 대안이라고는 하지만 입지적 장점이 없는 임대주택은 공실로 남을 뿐 수요자의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 입지가 좋은 곳에 들어서면 땅값이 임대료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취약계층에 기회가 돌아가기 어렵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핵심 입지에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주거비가 비싸지니 공공임대의 취지 자체를 상실해 버리는 것"이라며 "입지 좋은 곳에 임대료를 싸게 책정하면 정부 재원을 많이 넣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반지하를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라, 반지하 가구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배수시설 등을 정비하는 게 근본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관계자는 "도시정비를 잘 해서 반지하에 물이 안 차게 해야지, 반지하 금지가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 12일 자신의 SNS에 "반지하를 없애면 그 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노인, 환자들이 실제 많이 살고 있는데, 이분들이 현재 생활을 유지하며 이만큼 저렴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 장관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반지하 거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할 현실적 대책"이라며 "당장 필요한 개보수 지원은 하되, 자가·전세·월세 등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집주인을 비롯해 민간이 정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오는 16일 '250만+α(알파)'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대책에 반지하대책 등 주거복지정책이 포함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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