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에 내린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들이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전국 반지하 가구의 96%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특히 침수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통계청 2020 인구주택 총조사(지난해 12월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지하(반지하 포함)에 거주하는 가구 비율은 1.6%(약 32만7000가구)로 집계됐다.
이중 서울지역 지하 가구는 약 20만1000가구로 전국 지하 가구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 전체 가구 대비 지하 가구 비율은 5.0%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서울과 인천(약 2만4000가구), 경기(8만9000가구)의 지하 거주가구를 모두 합치면 약 31만4000가구에 달하는데, 이는 전국 지하 가구의 96%에 달하는 수치였다. 사실상 거의 모든 지하 가구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셈이다.
통계에 따르면 가구주들의 연령대별 지하 거주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고, 60대(1.8%), 50대(1.9%) 순으로 나타났다. 또 성별로는 남성 가구주 중 1.4%, 여성 중 1.9%가 각각 지하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울러 거주 층별 점유형태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는 월세가 51.1%, 전세는 22.8%로 합치면 총 73.9%가 세입자 신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우리나라 '반지하 주택'의 역사는 유사시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지난 2020년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이슈리포트 '영화 기생충이 소환한 지하 거주실태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62년 건축법 제정 당시에는 지하층을 지층(地層)이라 불렀는데 주택의 거실을 지층에 설치하는 것을 금하는 등 지하층의 주거용 사용은 금지돼 왔다.
하지만 1970년 긴박한 남북관계를 감안해 유사시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택에 지하층 설치가 허용됐고, 이후 1975년에는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에도 거실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 조치는 지하주거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돼 그때부터 지하층 전용이 급격하게 확산됐다.
그러나 지하·반지하 주택은 집중 호우나 태풍 등으로 침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와 제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미 서울시는 2001년과 2010년에도 반지하 건축허가 제한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이에 지난 2012년 건축법 제11조 개정으로 '상습침수지역 내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축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권고에 그칠 뿐 건축허가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결국 그 이후에도 시내에만 4만 가구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건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우로 인한 수해도 계속됐다. 지난 2017년에는 폭우로 침수된 인천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90대 노인이 방 안에 가득 찬 빗물 때문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 시흥시의 상습 침수지역 지하에서는 25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조손가구가 8번이나 침수피해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피해는 여전했다. 지난 8일 내린 시간당 100㎜ 이상의 기습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고 말았다.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50대 여성이 반지하 주택으로 들이친 물을 피하지 못해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국내 지하 가구에 대한 정책방안을 제시해오고 있다. 지난 2020년 당시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작성했던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이 주거비가 높은 서울과 수도권 특유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과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살지 않을 정도로 지하가 주거로서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공공임대주택, 주거급여, 집수리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지하문제를 해결하고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주택에 대한 임대금지 등 새로운 정책 수단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