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본인이 원하는 경우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하자는 소위 ‘조력존엄사 법안’을 발의하였다.
존엄사는 오래 전부터 안락사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자칫 존엄사라고 하면 인위적인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 것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2017년 제정된 연명의료중단 및 호스피스에 관한 법률도 존엄사법 대신에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의사조력자살은 안락사의 대표적 방법으로 최근 확산되고 있는바, 의사 커보키안이 고안한 의사조력자살 기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기계는 주사기를 통해 환자와 연결되어 있으며, 환자가 안정제를 투입한 상황에서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잠이 들면 치명적인 두 번째 약물이 주입되어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약품의 처방과 준비는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의사가 직접 주사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주사를 맞으며 자살기계와 연결된 것이기에 의사는 안락사의 주체에서 책임을 피해가는 방법인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마치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안락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인 안락사의 형태인 것이다. 마치 가족동반자살이 부모가 없으면 힘들게 살아갈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가장하며 실은 아이들을 살해한 후 부모가 자살하는 형태의 극악무도한 범죄이듯,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살해행위와 자신의 자살을 은폐하는 시도이다.
얼마 전 모 법조계 단체에서는 본인이 죽고 싶은 날짜와 장소와 방법을 특정하면 그렇게 실현하도록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존엄사법’을 제안한 바 있다. 가령 부부가 자신들이 신혼여행 갔던 호텔 객실에서 결혼 50주년에 의사조력자살을 하게끔 신청하면 국가가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자는 법률인 것이다. 마치 자시의 생명이 자신의 것인 양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생명(生命)은 살리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죽이라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생명권은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져 있는 동안 마음껏 생명을 향유하는 권리이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결정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확대해석하여 마치 생명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결정권은 생명을 존중하며 생명이 주어지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다.
의시조력자살을 법적로 인정하는 순간, 안 그래도 단연 세계 1위의 자살공화국인 우리나라가 더 심각한 자살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생명을 제 멋대로 마감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모든 사람에게 주게 되며, 한편 식구들에게 재정적으로 간병의 부담을 주는 등, 폐를 끼치고 있다는 자책을 하는 어르신들은 자녀들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의사조력자살 신청서에 싸인을 하도록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 자명하다. 자녀들 마음속에도 우리 부모는 왜 아직도 의사조력자살을 하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눈치 아닌 눈치를 주게 되기 일쑤일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생명경시풍조로 이어져 우리 사회는 태아에서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는 생명홀대 현상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고통스런 통증을 동반한 암환자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도 대상에 포함시켜 의사조력자살을 신청하는 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에 처음부터 이를 근원적으로 막아내야 할 것이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살해행위이자 환자 본인의 자살행위이다. 이는 생명을 존중하는 헌법에 반하며 살인을 금지한 형법에도 당연히 위법하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신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기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어떤 인간생명도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의사조력자살이 마치 인도주의적 복지정책인 것처럼 호도하는 거짓운동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4기 국가생명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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