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의 북왕국이 계속해서 이방 신들을 따를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를 세우시고 백성들을 회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능력 있고 시적인 말만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의 결혼을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적 부정의 의미인 육체적 간음을 행하는 창녀와 결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멜이 계속해서 간음을 저지를 때에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녀를 다시 사랑하고 부도덕에서 구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호 3:1) 이 사랑의 관계는 간음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신실하고, 용서하시며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은 고대 근동지역의 결혼 서약과 매우 비슷합니다. 호세아서는 결혼 서약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충격적인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호세아의 부정한 아내 고멜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여러 차례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을 애통하게 했으며 이에 따른 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신부, 그의 백성을 사랑하셨으며 벌하신 이후에 회복이 또한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관계에 화해를 기대하는 연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 2:15)
호세아는 다른 여러 선지자들처럼 삶 자체가 예배였으며 예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삶의 예배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세아가 고멜과의 관계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가 하나님께 얼마나 깊은 아픔을 주었는지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만족감에 사로잡힌 생각들은 어떤 사회에서든지 끔찍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진 지금의 사회는 엄청난 이혼율, 물질만능주의, 쾌락과 무절제를 비롯해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개인적인 찬양의 취향, 설교방식, 예배 순서에 대한 불만과 몰이해와 지나친 관여로 자기 맘에 드는 교회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언약에 대한 본질적 이해입니다. 그리고 자기중심주의적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객관적 예배’가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서라고 강력히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북왕국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이웃 국가의 이방신들을 받아들였고, 죄악 가득한 육체적 욕망에 빠지는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호 4:14)
더욱이, 쾌락주의적인 바알 숭배를 통해 불법적인 성관계를 합리화했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거부했습니다. 자심들의 불순종을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그들은 제사장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호 4:4) 물론 제사장들도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지 못했으므로 역시 비난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의 맹세를 저버렸습니다. 호세아는 이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강렬히 비난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충성으로 인해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이에 순종하고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멜은 남편과의 결혼 맹세와 약속을 무시하고 쾌락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호세아는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아내를 찾아다녔습니다. 호세아의 분노와 연민 그리고 고멜과의 약속을 깨뜨리지 않는 모습에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세아서는 부정한 백성들을 거부하시지만, 한편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시겠다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의 언약을 보여줍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실함에 대한 부정직한 행동으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호세아는 순결한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남편이 아내와 하나된 것 같이, 언약으로 그분의 백성들과 하나가 된 하나님께 간음을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세아의 순종은 예배에 있어서 마음뿐 아니라 행동이 포함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호세아는 부정한 아내를 계속해서 진정으로 설득하고 그를 구원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거나 하나님께 온전한 사랑을 드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호세아서는 도전과 확신,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나안의 바알을 예배하도록 유혹받지는 않지만, 범람하는 세속 문화에 의해 성공과 안정과 자만과 상대주의 그리고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의 우상을 예배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의 예배마저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치부하면서 성경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분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과 긍휼은 진노를 물리칩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 11:9)
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를 치유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로 돌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회개와 죄의 자백을 함으로써, 그분과 함께 바른 삶을 살고자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는 겉으로 표현하는 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인애’라고 번역된 히브리 용어는 ‘자비’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NIV 성경에는 더 적극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관계를 포함하는 ‘unfailing love(변함없는 사랑)’로 번역했습니다. 그것은 진심을 담은 예배와 겸손한 순종을 포함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또한 하나님 주권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호세아가 반복해 분명히 말하듯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지 인격적이고 지적인 동의가 아닌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다 더 인격적이며 적극적으로, 깊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와 같이 단순히 예배 순서를 따라가는 것 이상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의례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의 열정적인 교제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되며 ‘아멘’으로 그 말씀을 인정하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전인격적인 마음과 개인적인 헌신을 포함한 살아 있는 삶의 예배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부정한 예배는 결혼생활의 부정함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호 1:2)
둘째,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항상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셋째,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순결과 신뢰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호 5:1-2)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셔야 할 때에도 오히려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해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여섯째, 우리 죄악의 크기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호 14:1)
호세아 4장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호세아서의 변론은 마치 피고에 대한 검찰의 기소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첫 번째 기소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하지 못한 예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면서 예배인 척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호 4:15)
슬프게도 이러한 기소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매주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인지 자주 되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예배의 자리에 어떠한 가식을 가지고 갔다면 하나님이 없애 주실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일 아침 시간에 맞추어 예배 의자에 앉아 조용히 예배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 그리고 진실성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 4-5장의 천상의 예배와 같이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같은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예배 속에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