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 갑자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회사 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계약 관련 업무였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대표와 본부장이 먼저 가고 이틀 뒤에 합류하기로 했다. 출장 며칠 전부터 회사와 협력회사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출장을 가는 회사는 한국의 현대그룹과 같은 대기업으로, 회장의 모든 가족이 예수를 믿고 매주 화요일이면 회사에서 가족들까지 참석하여 70~80명이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기독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7%이고 나머지 인구는 대부분 무슬림 신자로 전형적인 회교 국가다. 인구가 약 2억8천만 명이고, 섬이 1만8천여 개가 되는 매우 큰 국가다. 출발하기 전에 베트남 선교사님께 같은 동남아권인 자카르타에 선교하는 분을 소개받고 싶었으나 연결이 잘 안되었다.
출발 당일, 집에서 읽는 너덜너덜한 성경을 휴대 가방에 넣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 바로 전에 회사 대표로부터 계약이 성사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할 역할이 없어진 것이다. 자카르타에 도착하여 대표와 회사 관계자의 영접을 받고 기분 좋게 중심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회사의 미래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카르타까지 왔으니 기왕에 그룹 회장을 만나고 싶어 회사 관계자와 그의 사위인 총괄 대표에게 연락하여 만나자고 요청했다. 일정이 바쁜 대기업 회장이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을 받을 것인가 궁금했지만 믿음을 가지고 요청한 것이다. 회장이 아무리 바빠도 당신을 만나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 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기독교 신자인 대한민국의 예비역 육군소장이 왔다는데, 시간을 내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회사의 번영을 위하고, 인도네시아의 발전을 위해 두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하나는 인도네시아에 기독일보, 즉 christiandaily나 미국의 christiantoday 같은 신문을 창간하도록 권고하고 아이디어를 주는 일이며, 또 하나는 내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극동방송 즉 FEBC 인도네시아를 적극 후원하도록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었다. 회장을 만나 우선 준비해간 너덜너덜한 성경책을 회장에게 보여주고 구글 클롬을 통해 최근에 내가 기고한 christiandaily의 오피니언 글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나라가 얼마나 복되고 위대한지를 함께 말씀을 나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생사화복을 온전히 주관하심과 앞으로 회사를 통해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시아는 물론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중심국가가 되고, 회장 가족을 통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동까지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었다. 더불어 우리 회사도 발전하고 이 그룹이 더욱 성장 발전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최고의 회사가 되며, 동남아시아는 물론 서남아시아와 중동을 대표하는 회사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했다.
회장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회사와 인도네시아와 복음 전파를 위해 한국말로 기도해 줄 수 있느냐며 요청하여 즉석에서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회장은 오후에 싱가포르 출장으로 바쁘니 명일 조카인 미디어그룹 회장과 조카인 목사를 다시 만나도록 그룹 총괄 대표에게 지시하고, 신문 창간을 위해 이슬람 국가임을 고려하여 Low key로 익명을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다음 날 이들을 만나 세부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극동방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었다. 극동방송의 AM과 FM 방송은 복음전파로 대한민국은 물론 북한 전 지역과 동북3성의 조선족과 연해주 조선족, 강제노역으로 끌려간 사할린의 조선인, 중국의 해안지역과 몽골과 일본 등지로 복음이 전파됨을 설명해 주었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이 있기 때문에 미디어 그룹회장이 주도하여 신문사를 설립하여 복음을 전하고, 기회가 되면 한국의 극동방송의 운영시스템을 견학하고 인도네시아 극동방송에 후원을 많이 하도록 제안했다. 아울러 파송된 인도네시아의 선교사들을 적극 후원하도록 요청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이슬람권인 중동에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나는 모른다. 단지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그들을 기도로 지원할 뿐이고 하나님이 아이디어를 주시면 담대하게 선포할 뿐이다.
선교의 핵심 주체는 그 나라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선교는 탈북자들이 주체가 되고, 다만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들을 잘 섬기고 포용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응원하여 이들이 북한의 가족과 친지와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김일성3대세습과 주체사상이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요, 동북3성과 연해주는 조선족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요, 중국은 한족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몽골은 몽골인이 주체가 되고, 일본의 복음은 일본인이 주체가 되도록 기도하며 후원하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슬림은 무슬림 국가들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군 선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뭘까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고 말씀하셨다. 바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과 교제하고 싶으셨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대화하고 싶으셨기 때문에 아담아! 아담아! 함께 놀자고 부르셨다. 인간도 동일하다. 아버지는 늘 아버지와 닮은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을 원하고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에 얼룩진 인간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소망을 주셨다. 따라서 죄 사함을 받은 인간이 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셨고,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 바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모든 복음서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먼저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이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서도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도 마찬가지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4복음서를 기록한 제자는 물론 모든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든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축복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이 걱정 근심 없이 이 세상에 와서 놀다가 본향인 천국으로 가는 삶을 살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거나 놀이동산에 가서 신나게 놀다 날이 저물면 엄마와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가는 것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고생하며 근심 걱정을 안고 사는 삶이 아니다. 고행이 아니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내세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가 잔치 같은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 더욱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행하신 표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를 내놓은 사건이다. 당시 잔치는 손님들이 오면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사람들이 취하면 질이 떨어진 포도주를 내는 것이 관례인데, 잔치가 진행 중이었는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은 더 좋은 포도주를 내놓은 사건으로 잔치를 더욱 풍성하게 하심이 이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맞게 잘 살아간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감탄과 감사와 감동의 삶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창조의 질서, 즉 우주의 운행과 자연의 질서를 보면 감탄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해와 달과 별과 바다와 육지와 산과 들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하고, 경이로운지 감탄할 뿐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이들이 상상력을 가지고 이룩한 아름다운 도시와 창조물과 가꾸어 놓은 자연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하고 감탄할 뿐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나의 힘으로 된 것은 없고 오직 감사할 뿐임을 깨닫는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감사한다. 아울러 가족과 친족에게 감사하고, 함께 근무했던 상관과 부하 동료에게 감사하고, 함께 했던 모든 분께 감사한다. 이런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감동하며 사는가? 친구를 만나 감동하고, 아이들에게 감동하고, 책을 읽다가 감동하고, 목사님 말씀을 듣다 감동하고, 성경을 읽다 감동하고, 성경을 쓴 저자들의 위대함에 감동하고, 말씀을 깨달으며 감동하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아서 감동하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에 감동하며 또 감동한다.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지 감동한다. 삶은 이처럼 감탄과 감사와 감동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말씀과 기도와 행함이라면, 감탄과 감사와 감동도 이에 일치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교통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과 교통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통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하며 자랑스러운가. 삶은 하나님을 믿은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고 축복이라고 믿고 있다.
성경에는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사도바울의 삶은 감탄과 감사와 감동의 삶의 연속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가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받고 얻어터지고 매 맞고 돌 맞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이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마지막 관문 제국의 심장 로마로 가기로 결심하고 예루살렘을 방문하려 하니 성령이 환란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울러 제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종용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에베소의 교회 형제들을 밀레도로 청하여 한 고별연설 장면이 나온다. 사도행전 20장 22~24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가장 위대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독교(말씀, 기도, 행함)의 위대성은 어떠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늘 소풍 같은 삶, 잔치 같은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신동만 장로(국군중앙교회,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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