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었던 책 중에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도 쯤 될까?” 그리고 책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섬세한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예민하다. 우리 말이 대표적이다.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얼굴도 예뻐’하려다가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면 감정이 상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온기가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주고 고민을 덜어준다. 그런데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는,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화상을 입는다. 여러분의 언어 온도는 몇도 쯤 될까?
우리의 기도에도 온도가 있다. 차가운 기도가 있고 따뜻한 기도가 있다. 메마른 기도가 있고, 은혜로운 기도가 있다. 어떤 사람의 기도는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격려가 된다. 여러분이 기도 온도는 몇 도일까?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의 기도가 나온다.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5절에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바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통상적인 기도자세는 서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겸손을 나타낸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런데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무엇을 말해줄까?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깊이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간절함과 겸손함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도에도 바울의 모습이 있는가? 지난 30년 동안 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한 대사도가 되었는데도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뜨겁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무릎을 꿇지 않을 만큼 깊은 사랑이 있었다. 우리의 기도에도 바울의 열정과 사랑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도 바울처럼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 속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
성경은 사람에게 두 가지 면이 있다고 말한다. 겉사람과 속사람. 속사람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나 영혼을 말한다. 의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음식과 운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2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을 좌우하는 75%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속사람이 겉사람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도록 기도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16절).
그렇다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방법이 뭘까? 1) 먼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영광의 풍성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능력을 따라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을 살리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신다.
우리가 환경이 어렵고 힘들 때,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눈을 들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강건해질 줄로 믿는다.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2)‘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이다. 우리가 여름철 갈증이 심할 때 시원한 물 한잔이 우리 몸에 생기를 주는 것처럼, 성령은 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줄 믿는다.
우리의 속사람이 어떻게 강건해질 수 있을까? 17절에서 바울은 3)‘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여기서 ‘계신다’는 말은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시고 영원히 거주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님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영원히 계신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마음에 계실 때 똑같은 모습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편안한 안방처럼 내 마음에 계실 수도 있고, 아니면 구석진 방으로 쫓겨난 손님처럼 불안한 자세로 앉아 계실 수도 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보좌에 편안하게 계실 수 있을까? 바울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믿음이란 주님을 지속적으로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변함없이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어디에 계시는가? 구석진 곳에 계시지는 않는가. 주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신다는 것은 내 마음의 보좌를 주님께 양도하는 것을 말한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 인생의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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