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5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껴서 기독일보(christiandaily)에 기고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한국교회의 역할과 세계선교 강국을 위해 계속 기고할 작정이다.
필자는 약 40년간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 생활했다. 군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우고 익혔으며, 군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대한민국과 군의 발전을 위해 '싸우면 이기는 군대'를 만드는데 부하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애국심의 발로였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불신자였던 한신 군사령관이 믿음이 좋은 사단장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박정희의 신앙전력화(信仰戰力化)와 한신의 '1인1종교 갖기 운동'에 힘입어 1976년 가을공수훈련이 너무 힘들어 이를 계기로 사관학교에서 예수를 처음 믿었다. 포병소위로 임관하여 1979년 3월, 3사 교수요원으로 경북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면서 대학생 선교회와 네비게이토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여름방학 중이었던 7월 말경 부산에서 실시한 네비게이토 전국수련회에 참가하여 막연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수련회의 주제 말씀이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이었다. 이때부터 이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군에서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복음을 위해서 가급적 목사님들을 잘 섬기려고 노력했고, 어느 제대에 참모나 지휘관으로 근무하면서 만나는 상관과 부하와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다. 훗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 같다.
2014년 6월 마지막 보직인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참모부장)으로 군을 떠나면서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위대한 인간이 창조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40년간 포병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 전방부대와 연합작전부대의 지휘관과 참모로 근무하면서 외국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외국을 나가게 된 계기는 1997년 가을로 기억한다.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세계기독군인연합회(AMCF) 동아시아 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오랜 야전생활을 마치고 96년에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 화력계획장교로 보직되어 전방에서 함께 고생한 아내와 처음으로 싱가포르 대회 참가신청을 했다. 현역은 우리 부부뿐이었고, 대부분 예비역이 참가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이웃집에 부탁해야 할 형편이었지만, 해외여행도 할 겸 무척 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연합사 상황실장에 발탁되어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울 여건이 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공식 출장도 아닌 개인적인 사유로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당시에는 대단히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상황실장은 오히려 주야로 대기하며 근무해야 할 위치이고, 한국군과는 다르게 미군들은 상황실 근무를 마치면 대부분 진급하는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다. 한국군 파트너가 일주일씩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한미지휘관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허락받아야 하는 일이라서 좀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하나님과 약속한 일이니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광자(狂者)처럼 그대로 추진하여 허락받았다. 다행히 상황실장에 보직되자마자 괌 KAL기 추락사건, 동해안 북괴잠수정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굵직한 상황처리를 잘했다하여 포상을 받은 상태라 승낙받았고, 여행 기간에도 특별한 상황이 없이 조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전역하고 아내와 함께 매년 2~3차례씩 외국 여행을 했다. 주로 패키지여행으로 한 번에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고,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골프여행과 관광을 겸한 선교여행도 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대학교수로 있는 사위가 연구년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방학 내내 손주들과 함께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여행했다. 물론 이스라엘 성지여행도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보기 위한 여행은 2019년 1월 초였다. 당시에 터키와 그리스 이집트를 여행 중이었는데, 여행 말미에 상식에 맞지 않는 자리다툼이 발생하였다. 복귀한 이후 어느 날, 보고 즐기는 여행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행을 혼자서 안 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떠오른 것이 어디를 가든 복음을 전하면서 여행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하든, 결혼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친구를 만나든, 업무를 보든,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전했다. 믿는 자들에게는 사도바울처럼 자비량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도록 도전할 생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과 성경말씀을 전했다.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갑자기 내가 고문으로 있는 회사 대표가 비즈니스차 이스라엘 협력업체를 방문하자고 제안하여 함께 여행을 떠났다. 대표와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한 대표의 딸과 다른 직원 등 4명이 함께 홍콩을 거쳐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가는 여정이었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하면서 이것저것 배우며 느끼고 때로는 한국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도 됐지만, 이번 여행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단히 우수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처음부터 모든 여행은 대표의 딸인 채린이가 계획을 했고, 우리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기 바빴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옆에 앉은 젊은이가 재미있게 보여 말을 걸다가 못하는 영어로 복음까지 전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홍콩에 착륙하여 우리는 홍콩 시내에서 1박을 하도록 계획하였는데, 이때부터 채린이의 진가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자기 친한 대학친구가 홍콩 시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고속전철을 타고 유명 관광지를 안내하며 친구를 만나 홍콩 맛집을 찾아가는데 거침이 없이 빛의 속도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엄청난 빠른 발걸음으로 익숙하게 안내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글로벌 시대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진목면을 보는 것 같았다. 텔아비브에 도착하여 협력회사 방문 전에 여호수아가 언급했던 해 지는 편 대해인 지중해가 숙소에서 멀지 않아 관광을 위해 주변에 있는 기차역으로 이동하여 모래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한국의 젊은이를 만났다. 대구에 사는 젊은인데 워킹비자로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다음날 텔아비브에 소재한 호텔에서 일할 수 있도록 면접을 보게 됐다고 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녁을 대접하여 격려하고 우리가 주일에 예배드릴 예루살렘에 있는 한인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회사의 일을 마치고 채린이의 진두지휘로 비가 내리는 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트램을 타고 1박한 곳이 아브라함 호텔이었다. 이곳은 허름한 모텔이었는데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나는 이곳에서 창세기 12장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을 내 마음의 중심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내가 처음 예수를 믿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1년에 두 차례씩 내비게이토 선교회 주관 수련회에 참가했는데 ,어느 해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제 찬송이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었다. 당시 참가한 군위탁생 형제들이 함께 부른 특별찬양이 같은 찬양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이 찬송의 가사를 생각하며 자주 부른다. 지금까지 창세기를 많이 읽고 묵상하고 있지만,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 평생에 헌신하고 발전시킬 말씀으로 내게 다시 다가왔다. 감격스러운 밤이었다. 약 4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이 살아서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 동일한 장소인 가나안 땅 중심인 예루살렘, 아브라함 모텔로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
이후 2020년 3월 코로나의 창궐로 활동이 제한되어 집에서 말씀을 집중적으로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올해 4월에 회사 일로 대표와 함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다녀오게 되었다. 출발 일정이 결정되어 나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며 선교를 위해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 기도하며 출발하였다. 다행히 양구에서 함께 근무했던 군목 출신 목사님이 LA에 살고 있어 이분을 통해 피닉스에 거주하는 특전사 주임원사 출신 장로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출발 전에 이분과 연락이 되어 도착하자 우리가 체류할 호텔에서 장로님을 만나 다음날 새벽기도 장소인 이분이 경영하는 태권도 도장에서 다시 뵙기로 했다. 새벽기도 후에 목사님과 주한미군 조종사와 결혼한 권사님 몇 분을 초청하여 아침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대화를 나눴다. 대한민국의 번영과 남북의 자유민주 복음통일과 동북3성과 연해주 옛 땅을 회복하여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며 세계선교 강국으로 나가는데 함께 기도하기로 했다. 우선 할 일은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임을 함께 공감했다. 목사님은 미국 교회를 빌려서 한인 목회를 하는 분이었다. 신앙심과 애국심이 투철한 분이셨다. 이분들은 지금까지 5명의 한국의 초중고 학생을 받아서 교육을 시켰다. 대부분이 군인 자녀였다고 한다. 우선 이곳의 장점은 학비와 숙박비가 미국의 타 도시보다 엄청나게 싸다는 것이며, 합이 월 일천 불 정도 든다. 학생은 주임원사 집에 홈스테이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새벽기도로 열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임원사의 통제로 무조건 하루에 영어단어 5개를 외우고 저녁 식사를 하도록 지도한다. 모두 다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한국에서 문제아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됐고, 적응을 잘하여 미국의 대학교로 진학한 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미국 생활이라는 것이 자동차가 없으면 꼼짝 못 하게 되어있고 한국처럼 유흥시설도 없어 오직 할 일은 기도하고 공부하며 체육활동으로 심신 단련을 하니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물가가 한국에 비해 많이 싸기 때문에 시장에서 장을 보아 한국식으로 식단을 짜 왔다고 한다. 미국 여행 비자가 3개월이니 한국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권사님들이 봉사 개념으로 3개월씩 교대하고 마지막 시간은 미국여행을 하고 복귀하는 제도로 운영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이와 같은 혜택을 보려면 뜻이 있는 한국의 교회나 개인이 홈스테이할 수 있는 집을 사거나 임대하거나, 기숙사 건물을 지어 투자하면 재산은 투자자가 관리하고, 이분들은 오직 인재 양성에만 힘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녀들을 세계적인 인재로 양성하기를 원한다면 한번 도전해 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계속>
신동만 장로(국군중앙교회,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신동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