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의 문제점
첫째는 조력존엄사라는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여 존엄한 죽음의 개념에 혼동을 일으켰다. 이미 의사의 조력으로 치사량의 약물을 투여하여 자살하는 행위를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라고 부른다. 법안에서도 의사에 대해 ‘자살’방조죄 적용을 배제한다고 함으로써(안 제20조의7) 이 행위는 ‘자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통증을 없애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존엄사라고 하면 안 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 일부에서 안락사법을 ‘Death with Dignity Act’라고 부르고 있다. 존엄(dignity)을 그대로 해석하여 안락사를 존엄사로 칭하는 것은 잘못된 용어 사용이다. OECD 1위 자살 국가인 대한민국에 ‘자살’이 조금이라도 ‘존엄’하다는 개념과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용어 정의가 안 되어 사용자마다 제각각 뜻이 다른 존엄사라는 단어는 법안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의학회 차원의 용어정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는 설문조사의 질문과 답을 왜곡되게 인용하였다. 의원실은 법안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국민의 82%가 의사조력자살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질문이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입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다. 긍정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입법을 단박에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찬성의 이유에 대한 답변은 법안이 제안하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과는 사뭇 다르다. 고통의 경감 때문에 조력자살을 택하겠다는 경우는 찬성자의 13%에 그쳤다. 나머지 87%는 죽음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거나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 때문에, 또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싪거나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조력자살법을 찬성했다. 법안이 만들어지면 말기 환자의 통증과는 무관하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울감이나 사회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사람마저 안락사나 조력자살의 대상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는 조력자살 대상에 대해 단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라고만 한 점이다. 여기서 고통은 통상의 진통제로는 조절되지 않는 말기환자의 극심한 육체적 통증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주관적이어서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2001년부터 상기 법안과 동일한 조건으로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네덜란드의 경우 20년간 고통의 대상을 확대해 왔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조력자살을 택하는 일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8년 정신질환을 이유로 20대 여성의 조력자살을 허락했다. 2020년 4월에는 고통의 상태를 중증 치매 환자로 확대했다. 2020년 10월에는 스스로 고통 정도를 표현했다고 보기 어려운 신생아부터 12세 미만 불치병 아동까지 확대하였다. 안락사 허용법은 걷잡을 수 없이 생명 경시 현상이 나타나는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의 실례가 되었다. 처음에는 엄격하게 ‘수용하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으로 안락사를 한정할 생각이었으나 한번 터진 물꼬는 막을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마지막으로 조력존엄사를 신설하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 끼워 넣었다는 점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의료집착을 중단하고 자연스런 죽음을 돕는 법이다. 이 법안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통해 고통을 줄여 주어진 모든 삶을 존엄하게 살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자연사를 거슬러 인위적으로 죽게 하는 행위를 동일 법안에 넣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안락사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뒤처져 있다. 죽음에 이르는 상반된 방법에 대해 이름을 위장하여 동일 법안처럼 다루면 안 된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의료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섣부른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조력자살법안이 아닌 존엄한 삶을 지켜주는 지원을 법에 담기 위해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안락사인 조력자살법안의 반대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겠다. (계속)
문지호(의료윤리연구회 회장, 명이비인후과 원장)
* 이 글은 <의학신문>에 실렸던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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