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한인 선교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 또는 무슬림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선 직접적인 선교활동이나 목회를 하기 어려우므로 사회사업이나 구호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이명근 교수(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석좌 교수, 저자)는 여러 나라에 파송된 한인 선교사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UNDP(유엔개발계획), UNHCR(유엔난민기구) 등의 국제 기구나 NGO 단체와 함께 난민·재난 구호활동, 병원 운영 및 컨설팅, 경제 발전 국제 협력 사업을 수행해왔다.
본 도서는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UN이나 국제기구, 국제 NGO에서 활동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아이티’와 관련해 쓴 내용이 눈길을 이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에 자리 잡은 아이티는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이다. 아이티 국민은 아이티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이티는 프랑스어 발음이다. 아이티는 아이티어로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아이티 공화국의 4분의 3이 산지이다”라며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학살과 질병으로 원주민이 몰살당하자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을 이 섬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현재 아이티인의 선조가 되었다”라고 했다.
그는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혁명과 내전이 지속하다 보니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난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에 강도 7.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전역이 폭삭 주저앉으며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25만 명, 부상자 30만 명, 이재민 500만 명이 발생했다.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한때 아이티를 지배했던 미국과 프랑스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아이티를 지원했다”라고 했다.
이어 “지진 발생 13일 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아이티 지원 우방국 그룹 각료회의가 개최되며 아이티를 위한 인도적 지원, 중장기 재건 등에 대해 협의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지진으로 복구되지 못한 건물이 즐비하다. 엄청난 원조에도 불구하고 아이티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다”라며 “지진 당시 인구의 70%가, 현재 60% 정도가 빈곤선 이하이다. 이런 사실을 반증하듯 지난 2019년 1월 아이티 대통령 조베멜 모이즈는 지진 이후 회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상처가 남아 있고 경제회복을 위한 기본 인프라, 서비스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진 후에도 더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지진으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되어 수인성 전염병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연일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1년이 지나서야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와 기부자들이 총 160억 달러가 넘는 지원을 했지만, TV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면들은 간과했다. 뒤늦게 조처했지만 이미 몇십 만 명이 죽은 후였다”라고 했다.
저자는 이어 “그뿐 아니라 구호단체 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구호 활동이 지체되었다. 또한, 공항도 작은데 그것마저 파괴되다 보니 구호물자의 전달과 배분이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군이 투입되기도 했으나 생존자 대다수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생필품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티 지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국제원조 역사에서 최악의 사례로 남았다”라고 했다.
그는 “끝으로 고아 입양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는 수많은 고아를 낳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약 20만 명이 해외로 입양됐다. 그 가운데 반 이상이 미국에 입양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고아 수출국’으로 유명했다. 아이티 역시 지진 이후 수많은 ‘지진 고아’가 발생했다. 따라서 아이티의 지진 고아 입양 문제에 있어서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진으로 아이티 사회가 혼란스럽다 보니 길거리에 방황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자 어느 단체가 이 아이들을 빼돌려 미국으로 입양시켰는데 그 수가 몇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이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에게 부모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아이티로 돌려보내진 아이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젖다 보니 고국에서의 가난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라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이 모두가 선의로 포장된 경쟁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리고 경쟁의 이면에는 이왕이면 더 세간이 노출되어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쪽을 택하는 인간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야말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가 아니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한 것처럼 보이는 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론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도 기꺼이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