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통 집과 가까운 병원에 갈 때 간단한 검진이 필요할 때는 수어통역사 없이 필담을 나누며 진료를 받는다. 예외의 경우로 아이와 동행할 때는 수어통역사를 대동한다. 그러나 야심한 밤이나 긴급 상황에서는 수어통역사가 바로 올 수 없다. 병원에서 상주하는 수어통역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어통역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긴급 상황 시 병원에서 수어통역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지원 시스템을 제대로 제공받을 수 없다.
어느 날 청각장애인 가족 중 한 분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접했다. 이 가족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장애 당사자일 경우, 반드시 의료 환경에서 접근성 제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어 통역을 희망하는 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해 주어야 하고, 다른 의사소통 방법을 원한다면 그렇게 제공해 주어야 의료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더욱 원활한 의료적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무엇보다 의료는 곧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인에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을 앞두고 환자 본인이 무통 주사를 놓아 달라는 의사를 간호사에게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간호사가 그걸 놓쳤다. 왜 놓쳤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의료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뒤늦게 수술을 끝낸 환자에게 전후 상황을 전해 들은 다른 가족은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에게 필담이 아닌 음성언어로 대응하는 간호사의 태도에 무시당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화가 나 간호사에게 필담을 재차 요청하니 그제야 메모해 주던 의료진 앞에서 장애인식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불쾌감은 꽤 오래 갔다고 전해 들었다.
필자는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의견을 피력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이러한 부당한 의료계 환경 앞에서 장애 당사자와 가족은 더욱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족애를 보이며 단단해지고 있다.
장애인식개선을 깨닫지 못한 채 사과 한마디도 없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의료진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건강권을 맡길 수 있을까?
이샛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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